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3




그 날 새벽에 짐을 싸서 기어이 형의 아파트를 나왔습니다. 가출은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헤어지자고 한 것도 처음이고요. 그래도 갈 곳이 없진 않았어요. 형의 아파트로 들어오기 전에 제가 살고 있던 집이 있었거든요. 안그래도 보기 힘든데 집까지 머니까 불편해서 제가 형의 집으로 들어와 살았던 것뿐이라.

그 밤에 나가겠다고 땡깡 부리는 걸 형은 위험하다며 극구 말렸습니다. 정말이지 헤어지자고 울고 불고 하는 연인을 그렇게나 걱정해주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그런 후 바로 형이 출동을 했다는 겁니다. 그날 그냥 얌전히 집에 있었으면 오후 시간은 함께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되는 일도 없죠.

형이 나가는 걸 보고서 저도 바로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더 이상 그 집에 못있겠더라고요. 벌써 일 년 가까이 산 집이었는데도요. 택시를 잡아 타고 집에 들어가니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바탕 또 눈물 바람을 해댄 덕분에 팅팅 부은 눈으로 정신 없이 잠이 들었습니다. 자주 안 들러서 먼지가 많이 쌓인 집이었지만 제가 돌아올 곳이라곤 여기가 전부인데다 그런 걸 신경 쓸만한 겨를도 없었어요. 그냥 멍뎅한 정신으로 까무룩 잠이들고 일어났을 땐 한 낮이었고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채, 혼자 그렇게 집안에만 있었습니다. 청소도 하고, 배가 고파서 밥도 먹었습니다. 형이랑 헤어지면 천지가 개벽하든지, 절망과 슬픔에 쓰러지든지, 하여튼 죽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봅니다. 정말로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몽땅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죠. 때 되면 배고프고, 잠도 잘 자고 그런 걸 보면. 아마 형도 그렇지 않을까요. 잘 먹고 늘 그랬듯 일도 잘 하고요. 그래서 또 우울해졌습니다

형에게선 자주 전화가 왔습니다. 한번도 받지는 않았어요. 정말 연락 귀찮아하는 사람인데 이렇게나 전화를 해 댈 땐 얼마나 급해서 이럴까 싶었지만 받아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또 그럴 기분도 아니었으니까요. 급기야는 카카시 형의 절친인 아스마 형에게까지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스마형은 검사인데 카카시형이랑 같이 일하면서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형사랑 검사랑은 사이가 별로 안 좋다던데 둘은 잘 맞는 구석이 있었나 봐요. 하여튼 워낙에 형이랑 친해서 아스마 형이랑도 자주 봤어요. 지금은 저랑도 꽤나 친해진 사이고요.

여하튼, 헤어진 걸 이 형도 알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근데 카카시 형 전화도 안받는데 아스마 형 전화라고 받았겠어요. 당연히 안받았죠. 전 제가 이렇게나 독한 놈인 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어요. 청소도 빨래도 전부 귀찮고, 왜 움직여야 하나 싶고. 큰 맘 먹고 산 탓에 애지중지했던 피아노의 먼지는, 집으로 들어 온지 일주일이 다 됐어도 아직 뚜껑 한번 열어 보지 않아 그대로 수북이 쌓인 채였습니다.

저는 그냥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아니면 침대에 누워 있거나. 별로 힘들진 않았어요. 평소에도 이러고 있는 날들이 많았거든요. 핸드폰은 충전하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온 지 이틀 만에 완전히 방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뭐, 불편하지도 않았어요. 원래 저도 그렇게 연락을 자주 하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이런 점이 형이랑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형의 집을 나오고서도 제 생활은 그다지 변한 것 같진 않았어요. 정말 미친 듯이 몰려온 귀차니즘만 제외한다면요. 근데 형을 기다렸던 그 시간들이 이토록 저를 단련 시켜 둔 것이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조금 기가 막히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5일쯤 지내니까 야마토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너무 소식이 없고 전화가 꺼져 있으니까 카카시형한테 전화를 했었던 모양입니다. 마주치면 죽일 것 마냥 으르렁 거리는 사람들끼리 연락을 한 거 보면 제가 집을 나온 게 이 사람들한텐 좀 충격이긴 했나봐요. 매일 그렇게 참아라 참아라, 나를 속 좁은 여편네 보듯 하더니 쌤통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래는 집에도 없는 척 하려고 했었어요. 근데 문을 부실 기세라서 어쩔 수 없이 열어 준 겁니다. 야마토라면, 왠지 정말 그럴 것도 같아서요.

“너 갑자기 왜 그래? 더위 먹고 미쳤냐?”

차라리 제가 더위 먹고 미친 거였으면 더 나았게요… 병이면 병원에 가면 되잖아요. 사실은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몰랐습니다. 누가 알고 있다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사실은 형이 보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도 습관인걸까요? 하지만 카카시 형은 전화만 해댔을 뿐 정작 절 찾으러 오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한테 차인 야마토도 왔는데.

하지만 이해합니다. 바빠서 그런 겁니다. 형이 아니면 누가 흉악한 사람을 잡아서 정의를 세우고 불쌍한 피해자를 돕겠어요. 그렇게 사는 게 바쁜 사람이니까 애인이 집을 나와도 애인 집 한번 못 오는 게 당연하죠. 아 정말…. 저 어쩌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됐을까요. 이런 못된 놈을 형은 또 뭐라고 좋아하고 말입니다. 정말 마음 넓고 뭐든지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만났으면 형도 훨씬 행복했을 텐데요.

“……왠일이야.”

그냥…..오랜만에 사람 얼굴이라고 보긴 했는데 여전히 제 마음엔 귀찮음이 한 가득 이었습니다. 사실 별로 반갑지도 않았습니다. 가만히 집구석에 처박혀 있게 놔두지 야마토는 왜 여기까지 찾아 온 건지. 설마 목숨이라도 끊었을 까봐? 그럴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물론……좀 기운이 없긴 했지만요.

야마토는 제 몰골이 별로 마음에 안든 모양인지 단박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거울을 안 본지가 오래 돼서 어떤 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요 며칠 씻지도 않고 옷도 안 갈아 입고 머리는 산발이고, 좀 처참할 것 같긴 했죠. 근데 보통 집에만 있으면 이렇게 되지 않나. 저만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로 신경 안 썼어요. 뭐 어때서. 야마토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귀를 막고 싶었는데, 귀를 막는 것조차 귀찮았습니다.

“시원하게 헤어지자고 했으면 멀쩡하게 잘 있기라도 해야 할거 아냐 미친놈아!”
“…”
“그 쿨한 우미노 이루카는 어디다 팽개치고 이러고 있어?”

좀 빨리 가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잘 지내는 것 같으니 그만 좀 가달라고요. 그런데 그 사이 벙어리라도 된 건지 말도 잘 안 나왔습니다. 귀찮다고 말해주는 대신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니 그제서야 야마토는 입을 좀 다물어줬어요.

야마토는 제가 앉아 있는 소파에 털썩 하고 주저 앉아 제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 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한심하다, 라거나 아니면 곤란하다, 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겠죠. 최근에 시간 감각도 거의 사라져서 얼마나 지났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한참. 그리고 다시 야마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씻긴 했냐?”
“…귀찮아서.”
“말 안 해도 그럴 것 같았다.”

야마토는 쭈그리고 앉아서 멍뎅하니 무릎만 보고 있는 저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습니다. 아, 머리 떡져서 더러울 텐데. 치우라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야마토는 떨어지기는 커녕 되려 제 머리를 가슴팍에 안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밥은 먹었냐?”
“…”

언제 먹었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라면도 끓여먹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으니까요. 움직이질 않으니까 배가 고픈지도 잘 모르겠구요. 머리를 안은 야마토의 팔에 꽉 힘이 들어갔습니다.

“숨막혀…”
“이 잔인한 새끼야. 니가 뭔데 날 고문해? 나 뻥 차고 다른 놈한테 갔으면 적어도 나한테 이런 꼴은 안보여야 할거 아냐?”

다른 건 몰라도 이 점은,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안…”
“여기 오다가 니네 형이랑 통화했어.”

형 이야기에 심장이 덜컹거렸습니다.

“새벽부터 전화 해대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나 그새끼 완전 싫어하는 거 너도 알잖아. 근데 아까 전에 목소리 들어보니까 안됐다는 생각부터 들더라. 너 핸드폰 꺼져 있다고 대신 좀 가보라고. 사정 사정해서 와 본거야. 일 끝나자마자 이쪽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이제 곧 와.”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있는 힘껏 야마토의 팔을 뿌리치고 현관으로 달려나갔습니다. 물론 문전에서 다시 붙잡히긴 했지만요.

“비켜!”
“새끼야 좀 가만히 있어!”
“잘 있는 사람한테 왜 그래? 헤어졌단 이야기 들었을 거 아냐?”
“이게 잘 있는 거냐? 밖엔 나가지도 않고 밥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이게 살아있는 거야?”
“나 괜찮다고! 이것 좀 놔!”
“닥쳐봐 좀! 너 왜 이렇게 기운이 좋아?”

사실은 혼자 있으면서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왜 내 팔자가 이렇게 됐을까 하고요. 근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까 진짜 불쌍한 건 제가 아니라 카카시 형인 거예요.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성실하고, 거기다 능력도 있는 남자라서 사실 저한테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형에게는, 저처럼 왜 자주 연락하지 않냐, 왜 함께 있어주지 않냐 떼쓰는 애 같은 애인보다 더 잘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씨 넓은 애인이더 잘 어울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있어서 형이 더 힘든 건 아닐까. 놓아주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함께요. 자기비하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요 뭐… 사실이니깐. 그렇게 생각하니깐 마음은 훨씬 편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의 얼굴을 볼 자신까지 생긴 건 아니었어요.

“나 갈 거야!”
“여기가 니 집인데 대체 어딜 간다 그래? 자꾸 반편이같이 굴 거야?”
“그래 새끼야 나 반편이다! 몰랐냐?”
“이게 대체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넌 형 보고 싶지도 않어? 기껏 와준다는데!”
“안보고 싶어! 절대로 안 봐!”
“야!!”

쾅-하는 큰 소리와 함께 등 뒤에 있던 현관이 크게 출렁인 것은 그 때였습니다. 놀라서 뒤돌아보고서는 더 놀랬습니다. 카카시 형이 현관에 귀신처럼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발로 현관을 어찌나 세게 찼는지 현관문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야마토와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형은 숨 쉬는것도 까먹고 굳어 있는 저의 팔을 붙들고 집 안으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그 순간 카카시형과 야마토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카카시 형은 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야마토의 손을 툭 치워내고서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미안한데, 가라.”

분위기가 너무 안좋아서, 특히 형의 기분이 너무 나쁜 것 같아서 진심으로 싸우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둘 다 삐딱하게 서로를 보고 있는데 이 정도 까지 사이가 나빴었나 싶고. 야마토는 곧 덤비기라도 할 듯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가 이내 거실로 가서 외투를 집어 들고 나왔습니다.

“에이 씨팔.”

야마토가 욕지기를 툭 하고 나가버리면, 집 안에는 저와 형 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은 침묵이었어요.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서로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제 팔을 잡은 형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 형은 좀 야윈 것 같았습니다. 원래도 살집이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선이 더 날카로워져서 가까이 가면 베이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입을 앙다물고 카카시의 형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습니다. 이미 마주친 거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는 게 좋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형은 손을 떼기는커녕 힘을 줘서 저를 자신 쪽으로 휙 끌어당겼습니다. 졸지에 빈 손으로 턱을 잡혀서 벽에 밀쳐졌습니다.

“읍…!”

이렇게 다짜고짜 키스 된 것은 처음이었어요. 둘이 있으면 항상 들러붙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지만 한번도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생증 보여준 적 없었던 거친 모습이 무섭기도 하고, 또 깐에 오기는 있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는데 턱을 억지로 비트는 악력에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혀를 뽑아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거칠게 키스하는 통에 입안이 얼얼했습니다. 떼어내려고 발로 차고 어깨를 밀어도 꿈쩍하지도 않더라고요.

제 생각에, 이건 정말 아니었습니다. 형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알았는데, 이렇게 지지부진 관계를 끌고 나가는 건 좋아 보이지가 않았어요. 어느덧 가슴을 애무하고 있는 손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겹쳐 잡았습니다. 아마 이대로 섹스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사랑 싸움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조금 흔들렸지만, 어차피 되돌아 간대도 똑 같은 일이 반복 되겠죠. 사람이란 게 뼛속부터 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아직 입안을 배회하고 있는 형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그제서야 형은 입술을 떨어트리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싫어?”
“……싫어요.”
“........”

싫을 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설마요. 다만,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일그러지는 형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빠득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들린 찰나,

“싫어요...! 읏, 싫어!”

애초에 형은 제 의사 같은 건 무시할 생각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드러난 목덜미나 귓바퀴를 물어뜯으면서 형은 기어이 상의를 벗겨냈습니다. 바지 버클은 너무 쉽게 풀려졌고 그 안으로 불쑥 들어온 큰 손에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강제로 키스 당한 것도 지금이 처음이었는데 하물며 강간이라니요. 그러나 제가 아무리 항변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형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새파랗게 날선 모습에 형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전달 되었습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하지마!!”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강간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보단 그냥 눈 앞에 있는 형이 무서웠어요. 사귀는 동안 싸울 때도 있었고 때때로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지만 이렇게 미친듯이 달겨든 적은 없었거든요. 막말로 기지배도 아닌데 혹여 조그마한 상처라도 날까, 어디 마음이라도 상할까 늘 그런데에 신경을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제 의견을 먼저 물어 주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엄청난 서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싫어, 싫어, 싫어, 하지마, 싫어.”

엉덩이와 허벅지 깊은 곳에 드나드는 손을 잡고 저는 몇번이나 싫다고 외쳤습니다. 고장이라도 난 태엽인형처럼 패닉에 빠져서 기어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그제서야 몸을 주무르던 손이 움직임을 멈추고 멀어졌습니다. 얼른 반쯤 벗겨진 바지를 추스르고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서 형의 표정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마주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돌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낮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했던 그 목소리는 새파랗게 화를 내던 모습과는 반대로 어딘가 기운이 빠진 듯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랑 지내는 게 힘들었어?”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만 하려고?”
“......네.”

여전히 떨리는 몸을 얇은 셔츠를 끌어 안는 것으로 간신히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성대 때문에 목소리는 형편 없었어요. 한가지 의외였던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처음으로 제가 이렇게도 냉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방금 전의 강간 미수 사건 때문에 여전히 놀란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없는 와중에도 머리는 제대로 일을 해내고 있었거든요.

저는 형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은거라고 그렇게 기특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마음은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제가 형 옆에 있는 것보다는 그만 떠나 보내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그렇게요. 매일 징징거리기만 했던 것 같아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러니까 헤어질 때 만이라도 어른스럽고 싶었습니다. 물론 생각만큼 그렇게 깔끔한 이별은 아니게 되었지만요.

형은 한참을 절 바라보다 벽을 한번 쾅 치고는 말 없이 멀어져 갔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 지는 것을보면서 많은 감정이 한번에 소용돌이 치며 가슴을 두들겨 댔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대로 주저 않아서 새벽 내내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마 형은 영영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된 것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スポンサードリンク


この広告は一定期間更新がない場合に表示されます。
コンテンツの更新が行われると非表示に戻ります。
また、プレミアムユーザーになると常に非表示にな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