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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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는 시계도 확인하지 않게 되었고 그냥 침대에 기어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이런 상태로 있으면 안된다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형이랑 헤어졌다고 제 생활이 어떻게 된 것도 아니고 하물며 지구가 멈추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형이 그렇게 가 버린 후에 저는 극심한 무력감에 빠져 있었어요.
꼭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머리 속이 텅텅 비어서 정말 아무 생각도 안났거든요. 또 한 일주일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야마토가 죽 같은 걸 사와서 제 입에 억지로 구겨넣고 가긴 했습니다. 야마토는 이불 속에서 꿈쩍도 안하는 저를 억지로 일으켜서는 볼이며 팔을 더듬어 확인했어요. 먹은게 없어서 그랬는지 좀 마르긴 했습니다. 입고 있는 바지가 약간 헐렁해졌거든요.
“너 냉장고에 내가 넣어 둔 거 손도 안댔지? 굶어 죽으려고?”
“.........”
“이젠 말도 안 할 생각이야? 대답 좀 해라. 어?”
말하는 법도 까먹은 것 같았습니다. 음식을 씹고 소화시키는 법도요. 짜증도 귀찮음도 슬픔도 몽땅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가끔씩 멍뎅한 머리로 형 얼굴이 생각나면 그냥 생각 난 대로 두었습니다. 뭐가 괴롭고 힘든 건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울음이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간신히 두 세숟갈 죽을 삼키면 야마토는 부지런히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먼지도 치우고 욕실 청소도 했습니다. 저를 뜨거운 물에 쳐 넣고 목욕도 시키고 면도도 해주고 머리까지 말려줬어요. 저도 저지만, 얘는 진짜 바보같은 놈이예요. 저한테 차인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으니까요.
제가 있는 침실로 돌아온 야마토는 성대한 한숨을 쉬고서는 팔을 뻗어 저를 꽉 끌어 안아 주었습니다. 그 새끼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이러냐고, 나한테는 니가 훨씬 더 아깝다고 야마토는 그렇게 말했지만 야마토가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얼마나 멋지고 저한테는 과분한 사람인데요. 그냥 제가 못나서. 바람 핀 것도 아니고 그냥 바빠서 그런 건데 제가 그런 것 하나 이해 못해주고 그래서.
그러니까, 그걸 형도 너무 잘 알아버려서 이젠 연락하기도 싫어진 겁니다. 그날 이후로 형에게서는 전화 한통 문자 하나 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형이 억지로 안으려고 했을 때 가만히 안겨줬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정나미가 떨어질 법도 하죠. 내가 변변치 못하니까요. 모두 내가 나빠서, 그래서.
-......그렇게 나랑 지내는 게 힘들었어?
사실은 그냥 조금 외롭고 속상했을 뿐이었는데. 맹세코 힘들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멍청하니 있다가 따듯하고 기분 좋은 온기를 주는 어깨에 이마를 기댔습니다. 제가 야마토를 멍청한 놈이라고 욕은 하지만 사실 되게 착한 애예요. 틱틱대고 싸가지 없게 구는 것도 다 그냥 액션입니다. 요즘만 해도 시간만 나면 찾아와서는 제가 죽었는지 어쩐지 확인하고 밥 먹이고 말 걸어주고, 이렇게 해주는 거 야마토밖에는 없었습니다.
얌전하게 어깨에 매달려 있는 저에게서 약간 멀어진 야마토가 잡고 있던 제 목덜미를 움켜쥐었습니다. 가까워져 오는 얼굴도 닿아오는 입술도 침입하려 하는 혀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야마토랑 키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삽입 섹스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슬아슬한데까지 갔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형이랑 사귀는 동안에 한 건 아니고 그 전에요. 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얘 설득에 넘어가서 정말 사귀었을지도 모릅니다.
전 야마토를 꽤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애감정은 아니지만요. 형이랑 싸우고 침체해 있으면 매번 찾아와서 달래주는 것도 야마토였고, 심심하다고 하면 군말 없이 놀아주는 것도 야마토였고, 재미 없는 농담 치면 욕하면서도 또 받아쳐주는 것이 야마토였습니다. 야마토를 생각하면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듭니다. 가끔씩 형제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연애감정이 들지 않는 건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었겠지만 나 아직도 너 좋아해. 하타케 카카시 그 자식보다 몇 배 더 잘 할 자신도 있어. 그런데도 나는 죽어도 안되겠어?”
꽤 긴 키스 후에 야마토가 던진 질문에 전 잘 나오지 않는 말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분명 야마토는 좋은 애인감이긴 했습니다. 재밌고 다정하고 연락도 자주 하고요. 하지만.
“십팔, 내가 너 때문에 죽겠다. 진짜....”
야마토는 저를 다시 꽉 끌어 안고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야마토는 울지는 않았지만 꼭 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야마토는 그렇게 한참을 저를 안고 있다가 좀 자라며 저를 침대에 눕혀 주었습니다. 너무 많이 자서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상냥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금새 눈꺼풀이 감겼습니다. 눈을 떠 보면 아침이었고, 그 날 이후 야마토가 저의 집에 방문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저 같아도 짜증났을 거예요. 사실 저같은 놈한테는 카카시형도 야마토도 과분했죠. 제까짓게 뭐라고. 나중에 생각한 거지만, 아마 이때 저는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두 사람이 제 생활에서 이제는 없어진 거라고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집에만 누워있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 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었고, 야마토가 두고 갔을 죽을 꺼내 데워 먹었습니다. 제 구실을 못한다고 생각했던 위는 생각보다도 잘 움직였습니다. 제 몸도 그랬고요. 양치도 하고 스스로 머리도 감고 면도도 했습니다. 거울 속에 보인 제 얼굴은 못본 새 꽤 수척해 있었지만 단장을 하고 깨끗한 외출복을 꺼내 입으면 아주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어요.
형이랑 살면서 그만 두었던 과외 아르바이트를 구했습니다. 방학이라 시간이 많았어요. 일어나면 밖에 나와서 좋아하는 가게의 백반을 먹었고 카페에 와서 책을 보면서 커피도 마셨습니다. 밤이 되면 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술도 한잔 했고요. 친구들은 오랜만에 제 얼굴을 본다며 진심으로 반가워해주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바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수다도 떨었습니다.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요. 형이랑 만나기 전에 제 생활은 원래 이랬었어요. 제가 일하는 것도, 밤 늦게 친구랑 술마시며 돌아다니는 것도, 특히나 바에 가는 걸 죽어라 싫어하던 형 때문에 그냥 하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그렇게 모든게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눈물샘에 고장이라도 난 것마냥 눈물이 많아졌다는 것 빼고는요.
이상한 일입니다. 헤어질 때도, 헤어지고 그 뒤로도 한참 울지 않았는데 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다가 집에만 오면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집에 와서 처음으로 외출을 하고 돌아온 밤에, 이불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순간 야마토 생각이 났지만 꾹 참았습니다. 더이상 야마토한테 어리광 부려서는 안된다는 그런 자각은 있었나 봅니다. 어쨌든 그렇게 집에는 잘 안들어가게 됐습니다. 집은 또 방치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집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왔어? 얼굴 보기 힘드네 너도.”
오랜만에 만난 아스마 형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형과 헤어진지 한달 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 형도 바쁜 사람인데다 귀찮은 건 죽어도 싫어하는 성격인데, 며칠에 한번씩은 잊지 않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왔어요. 한번 보자는 그 문자에 저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아스마형은 카카시형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까요. 그래도 계속되는 연락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어서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스마형은 제가 갑자기 전화를 거니까 당황해 하면서도 만나러 가겠다며 직접 제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과외 알바를 끝내고 오면 아스마형은 이미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이라며 첫마디만 그렇게 덜렁 던져 놓고 담배 두대를 다 태울 때까지 서로 대화는 없었습니다. 원래부터 말이 많은 형은 아니었어요. 저는 아스마형이 세대째 담배를 꺼내드는 것을 빼앗아 다시 담배곽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제서야 아스마형은 웃으면서 여전하다고 운을 뗐습니다.
“잘 지냈어?”
“네...”
“다행이네.”
단도직입적으로 왜 보자고 그런거냐 물으면 아스마 형은 냉정해졌다며 웃으면서도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습니다. 아스마 형은 그 자식이 다 잘못한거니까 이만 화해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스마형이니까 분명 카카시형 이야기를 할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직접 그 이름을 들으니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습니다. 저는 답하지 않은 채로 앞에 놓인 아이스 카푸치노의 우유거품을 스트로우로 휘휘 젓고만 있었어요. 화해라니요. 헤어졌는데 화해할 게 뭐가 있나요. 거기다 형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스마형은 기어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는 뭐라뭐라 더 말했지만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저는 가만히 있다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형이랑 저 싸운 거 아녜요. 헤어진거예요.”
“......”
“카카시형도 벌써 저 같은 건 잊었을걸요. 신경써주신 거 감사해요. 이제는 안그려셔도 돼요.”
저 같아도, 저 같은 건 그냥 하루만에 잊었을 거예요. 목이 메여서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자존심이니 자존감이니 하는 건 저 바닥으로 처박혀서 남아있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일년 남짓이나 사귀면서 즐겁고 좋은 날도 많았는데,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날도 있었는데 몽땅 착각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거든요. 아스마형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딱딱하게 굳어진 제 얼굴을 한번 보고서는 말했습니다.
“그 자식 요즘에 집에도 안들어가고 일 끝나면 술 밖에 안마셔. 담배도 너가 끊으랬다고 한참 안피더니 요즘엔 입에 달고 사는 모양이고.”
“........”
“너는 헤어졌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 자식은 아니야. 일년을 연애했으면서 그 새끼 성격 모르겠어? 어차피 남한테 주절주절 하소연하는 법도 모르는 자식이야. 불러내서는 한마디도 안하고 소주만 진탕 마시다가 서에 들어가서 쳐자고 그런지 한참 됐어. 연락을 해보든가 찾아가든가 사정이라도 해서 데리고 오라고 해도 그렇게 하면 너가 싫어한다고, 그거 한마디 하더라.”
미련한새끼라며 기어이 욕을 하고서 아스마형은 미간은 좁혔습니다. 아스마형도 형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계속 줄담배를 피워댔어요. 두 사람이 저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스마 형이 느꼈을 답답함은 저도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원래 카카시형은 괴로운 이야기, 싫은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타입이었거든요. 말재주도 없는데다 속마음은 더더욱 말을 못했습니다. 오비토라는 친한 동료 형사님이 돌아가셨을 때도요. 아스마 형이랑 술만 마시고 다녀서 전 이유도 모른 채 걱정밖엔 못했었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지 도대체 왜 말을 안해주는 거냐고 화도 많이 내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그냥 속으로만 삭이는 거, 아무리 고치라고 사정해도 타고난 성격이 그런건지 고쳐지진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 어려서, 여덟살 차이나 나니까 의지가 안돼서 더 그랬겠죠. 제가 부족해서 그런겁니다. 전부요.
“너 정말 그 자식한테 정 떨어졌어? 그런 거 아니면 다시 만나.”
“......”
“그 새끼 너 없으면 죽어.”
너 없으면 죽는다고, 사실 듣고도 못 믿을 말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죽을 지경이면 벌써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더 자주 연락하고요. 문득 하루종일 형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열심히 참고 기다렸지만 야속하고 섭섭하고 외로웠습니다. 이때 저는 제가 지금도 여전히 형이 연락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없을겁니다. 헤어지는 게 형한테 더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헤어진건데 이래서는 정말 어린애가 땡깡부리는거나 다름 없잖아요.
“카카시형은 괜찮아요. 저 같은 거 없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겠죠, 이번에도 혼자서 잘 삭여낼 겁니다. 제가 없어도요. 그런 거 잘 하는 사람이니깐. 정말 힘들어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대로 앉아있으면 울 것 같아서 커피 값만 테이블에 올려놓고 도망치듯 카페를 벗어났습니다.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아스마형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앞을 향해 달렸습니다. 한참을 달려 자리에 멈추면 모르는 빌딩숲에 서 있었습니다.
이미 날은 어둑해졌고 저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한잔 하고 찜질방이나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어요.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카이타니 케이치, 얼마전에 바에서 만난 남자였습니다. 딱히 사람 사귈 생각으로 바에 갔던 건 아니어서, 카운터에서 마스터가 주는 가벼운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왔어요. 대꾸도 안하고 앉아있는 저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다가 기어이 제 핸드폰에 번호를 찍어 갔습니다. 바에서 죽치고 살기라도 하는건지 갈때마다 옆에 들러붙어서 그걸 보는 마스터까지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습니다.
카이타니 케이치라는 남자는 짧게 친 갈색 머리카락을 세우고 방글방글 잘 웃는 타입의 사람이었습니다. 첫인상만 보면 냉혈한일 것 같은 카카시형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젠틀해 보이는 야마토하고도 다른 인상이었습니다. 그 나름대로 미남이기는 했지만 그냥 동네 양아치 같은 타입의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성격은 잘 모르겠어도, 말재주는 좋았습니다. 우스갯소리를 잘 했거든요. 울리는 전화기의 통화버튼을 누르면 특유의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루카? 나야. 오늘은 안 와? 나 벌써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말을, 카카시형이 해줬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생각하지 말아야한다고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그 이름 때문에 저는 꾸욱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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