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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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불빛만이 듬성듬성 켜져있는 어스름한 서재 책상에 앉아서 카카시는 피다 만 시가를 꺼내들었다. 성글게 풀어진 끝을 다듬어서 불을 붙였다. 시가 잎의 쌉싸름한 냄새가 허공에 흩어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서재에 퍼지는 독한 향을 즐기면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몇개의 우편물들을 확인했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도착하는 우편물들의 대부분은 사교파티 초대장이나 그룹 총수가들끼리 주고 받는 사적인 것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카카시는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인쇄되어 있는 연보라색의 엽서 하나를 발견했다. 돌연 여행을 다녀오겠다면서 유럽으로 떠났던 약혼녀 스즈메로부터의 엽서였다.

정신차려.

서정적인 풍경사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문장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네 글자였지만 카카시가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리 없었다. 분명 이주 전 베를린에서 열렸던 은밀한 사교파티에서 어떤 아가씨와 하룻밤을 보낸 것을 들킨 것이다. 서로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집착에 가까운 집념도 그렇지만 이제 엽서로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유치함에 두통이 밀려왔다.

카카시가 나카노 그룹의 영애 스즈메와 약혼을 한 것은 그가 한창 스타더스트 패밀리의 경영승계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즈음이었다. 약혼을 하면서 건설업을 기반으로 하던 나카노는 자연스럽게 스타더스트 패밀리 산하의 건설사로 흡수합병되었다. 합병을 목적으로 한 약혼은 아니었다. 대기업이라고는 해도 일본 내수용이었던 나카노 그룹은 이미 수명을 다해가던 즈음이었고 약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것이었다. 스타더스트 패밀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그룹과 회사를 합병하면서 커왔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스타더스트 패밀리와 나카노 그룹의 관계는 할아버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타더스트 패밀리의 총수였던 카카시의 할아버지와 나카노 그룹의 차녀가 결혼하면서부터 맺어진 관계는 나카노의 총수가 세번이나 바뀌는데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끈끈했다. 돈과 혈연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결속력이 거북했지만 그가 스타더스트의 경영승계권자인 이상은 그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즈메와의 약혼은 이 연장선상에 있었다.

물론 카카시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스즈메와의 약혼을 파기할 수 있었다. 적어도 스즈메는 이사회에서 원하는, 그러니까 스타더스트의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이것은 카카시가 약혼 파기의 의사를 보이면 여기에 의문을 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카카시가 그녀를 차지 않은 것은 오랜 우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카카시가 먼저 약혼을 파기하면 스즈메는 물론이고 나카노 집안이 큰 타격을 입게될 것이 너무 자명했다.

카카시는 스즈메가 스타더스트 인더스트리의 법무팀에서 상임 변호사로 있는 시라누이 겐마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즈메는 카카시에게 늘 쇼하지 말라며 큰소리 쳤지만 실제로 쇼를 하고 있는 것은 스즈메였다. 골치가 아픈것은 그녀가 카카시의 여성편력에 대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연애에 꿈을 가지고 있는 스즈메는 여성관계가 문란한 카카시의 행동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녀가 마음에도 없는 약혼을 파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딱히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적은 카카시의 근처에 유일한 여자는 스즈메였고 스즈메는 약혼녀라는 지위를 통해 조금이라도 카카시가 여성편력에서 벗어나도록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스즈메의 이런 노력은 여지껏 제대로 보답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친구라는 빚 때문에 카카시와 그녀의 끝날줄 모르는 공방전은 이미 유치찬란한 애싸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러시아 외교부 소속으로 다방면에 인맥이 좋은 스즈메는 카카시의 불륜(?) 현장을 급습하기도 하고, 카카시가 상대한 여자들에게 교묘하게 카카시를 모함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사회에서 눈물바람을 하는 기행동을 하기도 했다. 물론 카카시도 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카카시가 용을 써도 연애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여자의 레이더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나이 먹도록 이런 뻔하고 유치찬란한 행동을 하고있을줄은. 카카시도 스스로가 기가막혔다.

겐마는 몇번인가 스즈메를 보고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일견 가벼워 보이지만 겐마는 변호사 답게 평소에도 신중한 언행을 하는 편이다. 아마도 스즈메가 마음을 표현한다면 겐마는 절대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얼른 약혼같은 것은 파기해 버리고 겐마에게 가면 좋을 것이라고 그는 혀를 찼다.

카카시가 엽서에 대한 보복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 도중에 인터폰이 울렸다. 저택의 대부분의 일을 관리하고 있는 바네사였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쿠르니코바였지만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를 성으로 불렀다. 구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던 바네사는 러시아 억양이 강한 미국식 영어를 썼다. 그녀는 미국의 작은 회사에서 비서일을 하다가 카카시의 집으로 왔다. 지금은 사업건으로 잠시 일본으로 들어온 카카시의 신변을 돌보고 있었다.

"스즈메 아가씨로부터 전화가 와 있습니다. 연결해드릴까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수화기 너머로 카랑카랑한 스즈메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즈메는 인사도 생략하고 카카시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카카시는 수화기를 멀리 떨어트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잘못된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그 열혈성격이나 정의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건지. 카카시의 건성건성한 응답에 흥분한 스즈메는 한바탕 으름장을 놓고 뚝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진짜로 가만두지 않을거야!

이번에는, 이라니, 과거에도 몇번이나 들은적있는 대사에 카카시는 정직 질렸다. 그가 애인대행이라는 것의 존재를 안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신문의 칼럼란에 실린 애인대행에 관련한 글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짜로 이렇게까지 하실겁니까?"

카카시는 스즈네가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야마토에게 그 '애인대행'이라는 것을 구하도록 지시했다. 열명이 넘는 비서들 중에서 유일하게 측근비서 일을 수행하는 야마토는, 대개 카카시가 하는 일에는 그게 뭐든지간에 토를 달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내 일에 관심이 많아졌어?"

카카시는 은연중에 간섭하지 말라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야마토는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런 야마토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내키지 않는 일을 시켜도 결국엔 제대로 해낸다는 점이다.

카카시라고 어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이 얼마만큼 유치한 일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지금 애인대행이라는 것을 사서 오랜 친구 앞에서 게이 행세를 하려는 것이다. 아직 나도 젊구나, 카카시는 소매에 푸른빛 커프스를 달면서 생각했다. 물론 이런 비상식적인 행세를 스즈메가 진심으로 믿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즈메는 분명 카카시의 게이행세를 보고 어이없어하면서 또 한바탕 난리를 칠 터였다. 그저 의도라고는 하나 뿐이었다. 그는 단지 스즈메가 자신의 의도를 깨닫고서 약혼을 파기해줬으면 싶었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만족하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스즈메는 겐마와 잘 될 것이고, 자신은 더 이상 쓸데 없는 감정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희망적인 결론에 젖어서 이때 카카시는 누가 자신의 애인대행으로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름도 나이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검은색 긴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눈을 가진 어린 청년이 어떻게 카카시의 마음을 휘두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사회 회의는 이미 애인대행을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서도 삼십분이나 지나서야 끝이 났다. 카카시는 야마토가 찍어둔 네비를 따라서 길을 잡았다. 일본에 와서 스스로 운전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야마토는 약속시간에서 20분이 지나면 계약 파기라고 했었다. 시간을 보고 아차 싶었지만 애초에 하려 했던 일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별로 조급하지는 않았다. 그냥 으레 통과절차처럼 스즈메의 잔소리를 듣고 나오면 되지 않겠는가. 짜증은 좀 나겠지만. 일이 끝나면 요코하마 근처로 혼자 드라이브를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의 람보르기니가 번화가의 대로변으로 들어섰다. 카카시는 서행하면서 보도쪽을 들여다보았다. 서서히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번화가 입구에서 그는 검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 타고난 듯 자연스러운 갈색피부를 가진 청년이었다. 슬림하게 말랐지만 약간 동그란 얼굴에서 이제 스물 초반이나 됐을 법한 앳됨이 보였다. 평범하다 못해 수수하기까지 한 옷차림을 한 청년이었다.

그는 한눈에, 그 청년이 애인대행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안된 일이지만 척 봐도 고급 냄새가 나는 동네에서 오로지 그 청년만이 튀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차를 세우면 청년이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선팅된 창문 너머 운전석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무심코 쿡쿡 웃었다. 검정 토끼, 그것이 청년의 첫인상이었다.

"대행 업체에서 나온 사람, 맞지?"

카카시가 그렇게 물으면 청년은 움찔 놀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문이 날개처럼 펼쳐지면 그것이 신기했는지 검은 눈동자가 빛났다. 호기심에 여러가지 묻고싶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청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귀엽네.’

동물이 아닌 이상 카카시가 누군가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사실 이때 그는 열살 무렵에 소유하고 있던 농장에서 보았던 토끼 한마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카카시는 방학이 되면 유타주에 있는 소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그곳에는 소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그 중에서도 양을 모는 큰 사냥개들을 가장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 개들이 토끼 사육장에 넘어들어가 토끼들을 물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토끼 사육장을 보았다. 나중에 카카시가 토토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던 토끼는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토끼였다.

"타."
"여, 여기요?"

또 움찔거리네. 토토도 그랬다. 큰 사건을 겪고나서 토토는 다른 토끼들과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구석에 숨어있기 일쑤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육장을 들여다보면 토토는 늘 경계심 어린 눈으로 카카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선 큰 귀로 제 눈을 덮고 더욱 더 구석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무심코 청년을 토토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것을 참았다. 차에 타서도 청년은 경계심이 강했던 토토마냥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건들이면 당장이라도 도망갈 것처럼 굴었다.

"편하게 있어."
"아, 네...."

때에 맞지도 않게 옛날 기억이 떠오른 탓에 카카시는 답지않게 상냥한 어조가 되었다. 그러나 청년은 경계심을 풀지 않을 채로 뻣뻣하게 제 양 손을 꽉 움켜쥐었다. 카카시는 청년이 안전벨트도 하지 않고 안절부절 하는 것을 보고 허리를 기울였다. 여자에게도 베풀지 않는 친절이었지만 머릿속을 멤도는 토토의 잔상이 청년에게 겹쳐져 거북살스럽지 않았다. 청년은 카카시의 몸이 가까이 다가오자 눈을 꼭 감고 양 볼을 붉혔다. 초심자같은 그 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 쑥스러운 듯 경계심 어린 그 표정은 카카시의 머릿속에 큰 인상을 남겼다. 사업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타입의 사람을 만나왔지만 청년은 카카시가 접하는 카테고리의 사람은 아니었다.

청년의 허리에 벨트를 채우면서, 문득 그는 청년에게서 햇빛에 잘 말린 이불 냄새를 맡았다. 샤워 후에 집에서 막 뛰쳐나온 것 같은 비누향기와 은은하게 떠오른 땀 냄새는 그의 마음에 호소해오는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고급 향수 냄새와는 다른 의미로 카카시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이유는 몰랐다. 단순히 옛날에 귀여워했던 토끼랑 비슷해보여서? 아니면 새로운 타입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 그의 눈에는 청년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 안전벨트 한 거야."

그는 울렁이는 마음을 감추면서 그렇게 말했다.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면 어깨 위로 드리워진 까만 머리카락이 그에 맞춰 흔들렸다. 얼굴에 붙은 귀밑머리가 시선을 붙들었다. 청년이 빨갛고 촉촉해보이는 혀 끝을 내밀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카카시는 그 순간에 계획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밥은 먹었어?"
"아, 아뇨."

스즈메와의 약속시간이 이미 십오분이나 지난 때였지만 그는 이대로 청년을 스즈메에게 데려가고 싶진 않았다. 약속 시간을 저녁으로 미루자고 때 늦은 문자를 보내고서는 아스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스마는 작년에 카카시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매입했던 한 레스토랑의 쉐프이자 사장이었다. 아스마가 유학하고 있었던 당시부터 알고 있었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두 사람을 예약해달라는 말에 아스마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그도 그럴것이 카카시는 약혼녀인 스즈메 조차 요코하마의 레스토랑에 데려온 적이 없었다. 진짜 본명이라도 생겼냐며 호기심을 보이는 아스마의 말을 퉁명스럽게 잘라내 버리고,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잘 어울리네 긴머리."

출발하기 전에 그는 손을 뻗어 계속 신경쓰였던 청년의 귀밑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아직 솜털이 빠지지 않은 청년의 갈색 피부는 보송보송했고, 머릿결은 보기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핸들을 잡으면서 그는 제 가벼움에 쓴웃음지었다. 그에게는 자신이 가벼운 남자라는 충분한 자각이 있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타입을 발견하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호기심은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이 부려왔던 변덕과 화려한 편력의 일환일 수도 있었다. 정말 구제불능인 남자라고, 언젠가 스즈메가 한탄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라고 그는 수긍했다. 처음보는 청년을 조수석에 태워 약혼녀도 데려가보지 않은 레스토랑을 향해 길을 잡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섣불리 속단하고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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