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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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치씨는 뱃속에 말보따리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연예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느니, 현재 프로야구 승률이 어쨌다느니 어째도 좋은 이야기들이 끊임 없이 쏟아져 나왔어요. 저는 앞에 놓인 술을 홀짝이면서 가만히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맞장구도 쳐 주었지만 그 영혼 없는 대답에 케이치씨는 기어이 기력이 빠졌다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댔습니다. 답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고 원래 그렇게 잘 안웃냐고 묻기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내 이야기 재미 없어?”
“아뇨. 그런 거 아녜요.”

케이치씨의 이야기가 재미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되려 쉼없이 그렇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케이치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잡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 정신 없이 쏟아지는 이야깃거리들을 듣고 있으면 형을 떠올리는 일도 줄었습니다. 카카시형은 저에게는 장난도 잘 치고 가끔씩 애교도 부리고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좀 과묵한 사람이었어요. 딱히 좋아하는 스포츠도 없고 가십에 관심을 두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좋아했고요. 집에만 있는 저의 일상은 들어봤자 재미도 없을텐데 오늘은 뭘 했냐 묻고는 제가 TV에서 봤던 이야기나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면 그걸 그렇게 흐뭇하게 듣곤 했습니다. 어쨌든 케이치씨는 만난지 얼마 안된 사이긴 했지만 그런 형이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고, 저는 그것이 편했습니다. 안도감 비슷한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케이치씨 이야기 재미있어서 좋아요.”

반 이상 남은 잔을 한번에 비우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훔치며 말하면 케이치씨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흘러내린 제 앞머리를 귓가로 넘겨주었습니다. 카이타니 케이치라는 이 남자는, 여전히 잘 모르겠는 사람이었어요. 가벼워 보이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읽을 수 없었고 상냥하게 웃는데 그것이 진심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진지하게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물론 그런 남자였으니까 같이 있었던거고요.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애를 버리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멍청한 놈이네.”

마스터에게 제가 애인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케이치씨는 아마도 제가 차였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도 저는 영락없이 애인한테 차인 꼴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정정하지도 않고 테이블에 올려진 양주를 따라 털어 넣었습니다. 갑자기 턱을 잡혔고 아직 술을 삼키기도 전인 입술 안으로 혀가 들어왔습니다. 이상하지요. 싫다고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팔을 뻗어 깨끗하게 태닝된 목을 껴안았습니다. 서로가 아무런 감정도 없이 하는 키스는 그냥 오롯이 상대방의 온기만을 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여겨졌어요.

사랑이라는 게 뭘까요. 연애라는 건 또 뭐구요. 좋았던 기억보다 외롭고 쓸쓸했던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후회되고 그립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렇게 괴로운 거라면 사랑도 연애도 다시는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원래 형을 만나기 전에도 진지한 사랑을 꿈꾸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야마토가 연애하자고 했을 때 받아주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이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카카시형을 만나서 어느샌가 저는 변했습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런 걸 알았거든요.

하루에도 몇번씩 아스마형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카카시형은 여전히 담배를 피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있을까요. 저처럼 괴롭고 힘들다고 생각할까요.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뛰쳐나온 주제에 얼척없는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잠들었는데 형이 꿈에 나왔습니다. 나 너무 힘들다고, 나는 너 없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꽉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꿈인것도 모르고 좋아서 엉엉 울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저 혼자 뿐이었지만요. 저도 참 어리석은 인사입니다. 카카시형은 틀림 없이 잘 지내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분명히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즈음 저는 거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져 있었습니다. 과외도 금방 그만 두었습니다. 케이치씨를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 덕분에 거의 매일 바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케이치씨의 손에 이끌려 거의 지정석처럼 된 소파자리로 끌려가던 때였습니다. 누군가 제 어깨를 잡아 돌려 세웠습니다. 저는 바에서 야마토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야마토는 왠지 날이 서 있었고, 분위기가 좀 변한 것 같았습니다.

야마토는 네가 왜 여기 있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습니다. 야마토는 케이치씨를 한번 훑어보고서는 케이치씨한테 잡힌 팔을 억지로 떼내고 저를 밖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저는 왜 야마토가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끌려 나왔어요. 너 때문에 미치겠다고, 그렇게 말했던 날 이후로 모르는 사람처럼 훌쩍 사라져버린 주제에 왜 이러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출입구에 다 와서야 팔을 놔주는 야마토에게 외쳤습니다. 말 안한지 오래된 것 같은데 의외로 쌩쌩한 목소리도 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왜 그래!”
“너야말로 왜 이래! 여기가 어디라고 와?”
“내가 어디 못올 데 왔어?”
“집구석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이라도 된 줄 알았더니 이제 좀 살만해? 그래서 박아줄 사람이라도 찾으러 다녀? 그러면 내가 해줄게! 나 그럴 용의 충분히 있다 못해 넘친다고 말했잖아!”

저를 무슨 섹스에 환장한 놈으로 몰아부치는 어투에는 기함을 했지만, 얼굴을 구기고 비명을 지르는 듯 소리치는 야마토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저는 그 꼴 절대로 못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옆에서 돌봐주기는 커녕 힘들다고 벌써 도망이라도 가던지 했을걸요.

그걸 꾹 참고 옆에 있어준 야마토가 고마운 건 사실이었습니다. 정말로 오래 참고 견뎠다고, 너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이요. 하여튼 그 때문에 저는 더 화가 났어요. 저는 야마토가 그간 바에 왔다갔다 하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절 좋아한다고 했으니까요. 제가 뭐라고 그러면 안되는 건데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제가 나쁜새끼라서 그런거겠죠.

한편으로는 그제서야 현실이 눈 앞에 잡히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언젠가는 변하는 거라고 그렇게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아직 해본적은 없었지만 앞으로 하게 될 터였습니다. 야마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고 저를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더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내고 저는 과거로 잊혀질 겁니다. 야마토 뿐만이 아니라 카카시형도 그렇겠죠. 저랑은 다르게 착하고 마음 넓고 상냥하고 어리광부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사람을 만나서요. 저는 이 두 사람이 저보다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설마 형이랑 헤어진 것 때문에 야마토하고까지 이렇게 사이가 나빠질 줄은 미처 몰랐지만 어쩔 수 없는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습니다. 제가 멍청한 걸 누굴 탓하겠어요. 그래도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야마토의 그 곧은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용기는 없었습니다. 저도 양심이라는 게 있긴 있었나 봅니다.

“......새로운 사람 찾을 마음이 드디어 생겼나 본데 축하해.”
“....”
“너 말 맞아. 안 한지가 너무 오래돼서 요즘 꽤 다녔어. 너도 그래? 근데 나 너랑은 죽어도 안하니까 꿈 깨.”
“너.....”
“나한테 신경 끄기로 했잖아. 그럼 그렇게 해. 괜히 미련 뚝뚝 흘리지 말고.”

하지만 제 목소리는 생각보다도 더 차분하고 냉정했습니다. 제가 듣기에도요.

“너...내가 얼마나.....”

야마토는 울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큰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제서야 수척해진 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약간 까칠해진 턱과 마른 입술도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제가 한 말이 얼마나 야마토를 상처입힐지 모르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았어요. 야마토의 마음까지 걱정하고 배려해 줄 수 있을만한 신경이 저에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미련 뚝뚝 흘리지 말라는 그 말은 사실 야마토보다도 저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인정을 해야 했어요. 형이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건 그냥 미사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 그냥 바보 천치 마냥 형을 기다리는 날들에 지쳤던 겁니다. 제가 힘들어서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내뱉었던 헤어지자고 했던 말의 무게가 점점 현실감을 안고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보고 싶은 마음만 커져갔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헤어진 이후에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핸드폰을 확인하고, 오지 않는 연락에 좌절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먼저 연락을 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너무 못돼서, 울고 불고 떼를 쓰고 헤어지자고 하고, 이제는 싫다고 해서, 저 같은 거는 벌써 잊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걸 확인하기가 겁이 났어요. 카카시형 옆에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눈 앞이 깜깜해졌고 심장이 수천조각으로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카카시형의 모습을 보는 건 최대한 미래의 일이어야 했어요. 설마 이렇게나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야마토의 말을 더 이상 듣기 괴로워서 뒤돌아 자리를 떠나려고 하면 갑자기 어깨를 잡혔습니다. 어느새 무표정을 가장한 채 마주 서 있는 야마토는 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 어깨 너머 어딘가로 향한 야마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는 제 눈을 의심했어요. 제 뒤 다섯발자국 쯤 떨어진 곳에 형이 서 있었습니다.

무슨 날이라도 되었던 걸까요. 하루만에 야마토에 이어 카카시형까지 보게 되다니 말입니다. 그것도 두 사람을 처음 만났던 바에서요. 정말로 꿈은 아닌가 싶어서 눈을 깜박여 보았지만 환상은 아니었습니다. 형은 특유의 은발을 아무렇게나 쓸어넘긴 헤어스타일에 브이넥 검정 반팔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은색 메탈 시계가 손목에서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평소에 잘 입고 다니는 옷과 악세사리들이었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왼손을 찔러넣는 습관도 그대로였고요.

“아는 사람이야?”

모르는 목소리였습니다. 멍하니 형을 바라보고 있었던 저는 그제서야 형의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습니다. 형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순한 눈매를 가진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좀 더 긴 검정색 머리카락에 형 못지않게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외기에 드러난 형의 핏줄 선 팔뚝에 그 사람의 손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야마토에게 어깨를 잡혀 있었지만 그걸 뿌리치지도 못하고 바보처럼 서 있기만 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형은 말 없이 저와 야마토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표정을 지운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형은 좀 마른 것 같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달라진 건 없어 보였어요. 좋아서 같이 살기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뭐래도 상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비켜.”

오랜만에 들은 형의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땅을 기듯 무섭게 울리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을 앙다물었습니다. 역시 아스마형의 말은 역시 몽땅 거짓말이었던 겁니다. 꼴도 보기 싫어졌겠죠. 저도 제가 죽이고 싶을만큼 싫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눈 앞에 있는 카카시형도, 뒤에서 저를 붙잡고 있는 야마토도 다 꼴도 보기 싫었어요.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케이치씨가 바의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그때였습니다.

저는 야마토의 팔을 뿌리치고 손을 뻗어 케이치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급하게 저를 부르는 야마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대로 앞을 향해 달렸습니다. 카카시형쪽은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이제 형과 저는 진짜로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케이치씨는 당황한 것 같았지만 도망가는 저를 따라 같이 달려주었습니다. 케이치씨는 어느 사이엔가 저를 앞질러 있었고, 저는 케이치씨가 이끄는 곳으로 떨리는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처음 와보는 좁은 골목에 멈춰서서 저는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 앉았습니다. 얼굴을 뒤덮은 눈물이 너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지경이었습니다.

“울지마.”
“.....”
“귀여운 얼굴이 엉망이잖아. 너 괴롭힌 게 저 자식들이야? 검정머리? 아니면 은발?”

케이치씨는 제 머리를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저를 달랬습니다. 카카시형과는 형태도 느낌도 다른 팔이었지만 저는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꽉 매달렸습니다. 헤어져도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제 세계는 외곡되고 완전히 허물어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어요. 얼마간 그렇게 저를 껴안고 있던 케이치씨가 약간 거리를 두고 멍청해진 제 얼굴을 응시했습니다. 케이치씨는 새끼 손톱 반도 되지 않는 작은 흰 알약을 물고 있었습니다.

“다 잊어버려.”
“......”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

달콤한 말. 케이치씨는 상냥한 목소리로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고 문 알약을 두어번 씹은 후에 저의 입술에 키스를 했습니다. 닿은 입술을 통해 조각난 알약의 씁쓸함이 입 안으로 퍼져들어갔습니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했지만 몰라도 상관 없었어요. 그냥 할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습니다.

바보 멍충이, 모자란 새끼. 속으로 읊조렸던 향할 곳 없는 그 욕은 아마도 저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 겁니다. 머지않아 기분좋은 부유감이 몸을 휩싸고 까무룩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는 습기찬 어느 지하실 좁은 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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