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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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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자동차가 한 교외의 레스토랑을 향해 달려간다. 시 외각으로 차를 모는 동안에 남자는 이루카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몇살이냐, 이름은 뭐냐, 학생이냐, 어느학교 다니냐 같은 기본적인 신상 정보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루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무즈키가 말하길 애인대행을 할 때는 실제 신상정보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주소도, 전화번호도, 실제 이름도, 나이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묻지 않는 것이 규칙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이라니, 어떤 일이 생기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이루카는 남자에게 유일하게 이름 하나를 가르쳐주었는데 물론 본명은 아니었다. 스즈키 호무라. 즉흥적으로 떠오른 이름을 말해주면 남자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좁히면서도 "그럼 호무라라고 부를께"라고 답했다. 남자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그러나 이루카의 마음은 전혀 편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너무 무섭게 미남이고, 타고 있는 자동차는 당장이라도 거대 로봇으로 변신할 것 같은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표정이나 목소리는 너무 자상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차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간색이 되어서 드문드문 이어지던 약간의 대화조차 침묵으로 바뀌었을 때, 남자는 조금 초조한 듯 잡은 핸들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루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남자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미안해."
"에?"
뜬금없는 사죄의 말에 이루카는 따라가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뻔뻔하다 못해 능구렁이처럼 굴던 남자는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얼굴을 붉혔다.
"아까 한시간이나 늦었잖아."
"아아.."
"많이 기다렸지?"
이루카는 그제서야 납득했다. 한편으로는 엄청 놀랐다. 이 남자에게 사죄의 말을 들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견 냉정해 보이는 데다가, 이정도로 잘난 사람이라면 어쩌면 약속시간 같은 것은 그다지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거기다 어차피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나온 것이고, 시급은 약속시간부터 제대로 계산되는 것이니까 사실 이루카의 입장에서 손해나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남자는 꼭 미안하다는 말을 관철시키고 싶은지 이내 여러가지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작 알바생으로 나온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남자의 모습은 신선했지만 왠지 모를 어색함은 감추지 못했다. 분명 이 남자는 평소에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어차피 아르바이트 하는거고..."
이루카는 알바생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부각 시키면서 남자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그런데 일순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물론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으로 다시 원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더부살이를 오래했던 탓에 눈치가 빠른 이루카가 그걸 못봤을 리 없었다. 레스토랑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야 남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약간 딱딱한 말투였다.
"지금은 애인으로 같이 있는거니까 아르바이트니 그런 말은 하지 말도록 해."
아르바이트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이루카는 알지 못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토랑은 역시나 눈돌아가게 고급졌다. 요즘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자연주의 콘셉트의 레스토랑은 마치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루카는 남자와 함께 가장 안쪽의 VIP룸으로 안내받았다. 룸이라기보다는 작은 숲에 둘러싸인 정원 같았다. 테이블 앞쪽으로 확 트인 시야에는 무려 후지산이 보였다. 이루카는 입을 딱 벌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런 식당이 있다니 이루카로서는 거의 컬처쇼크에 가까웠다. 시종 딱딱하게 굳어있는 이루카와는 달리 남자는 이곳이 매우 익숙한 듯 경치가 잘 보이는 상석의 의자를 빼내 이루카를 불렀다. 남자는 진짜 제대로 애인 놀이를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여기 앉아"
"네..."
이거, 말로만 듣던 에스코트인가...... 아직 누구한테 해준 적도 없는데.
주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윽고 차례차례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입거리의 각기 다른 요리기 끊임 없이 나왔다. 단출한 라면 한그릇이면 만족하는 이루카에게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대접이었다. 엄청난 절경의 VIP룸에서의 풀 코스 요리는 과연 얼마일까? 이루카는 소름이 끼쳐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쩐지 주눅이 든다.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그것도 공짜로) 제 인생을 통틀어서도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라는 자각이 있지만 솔직하게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모든 비용은 의뢰인이 지불하는 것이지만.....이루카는 힐끔 남자의 반듯한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왜 이 사람은 애인대행까지 부르면서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려는 것일까? 여자도 아니고 그것도 남자를 불러서. 이 남자가 설령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굳이 애인대행을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성격 좋고 멋있게 생긴 사람이라면 분명 남자든 여자든 부자유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첫인상은 좀 무서웠지만 웃으면 믿음직한 인상으로 바뀌니까 그런 점도 분명 매력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애인 대행이라는 것이 아니더라도 좀 더 그럴싸한 루트가 있을텐데.
이루카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머리가 아팠다. 상류사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범인인 이루카가 알 수 있을리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아르바이트니까 이 사람이 하자는 대로 군말 없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진짜로 자신이 '애인역'을 충실히 해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애인이라면 왜 애인대행을 불렀냐, 왜 애인대행에게 이렇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냐,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이루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안타깝게도 이루카는 애인이라는 걸 만들어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애인끼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렵구나 애인이라는 거...'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기분 나쁨. 그래도 남자와의 식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말을 잃어버린 이루카 대신 대화의 주도권을 쥔 남자가 생각보다 더 말재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깊은 대화도, 사적인 대화도 아닌 음식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였지만 대행 업체 직원과 의뢰인의 대화로서는 이것이 한계일 터였다.
의미 없는 만남. 의미 없는 식사. 의미 없는 대화. 이루카는 솟아오는 염증을 속이고 간신히 웃어보였다.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래도 일이라고 하면 이루카는 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식사는 두시간이나 계속 이어졌다. 열두시부터 다섯시까지가 계약이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한시간 남짓이었다. 남자의 차를 타고 돌아가면 이루카의 알바는 끝날 터였다. 이루카는 이렇게 쉽게 돈을 벌어도 되는가 싶었다.
"이제 슬슬 갈까?"
"네."
이루카는 남자의 뒤를 따라 레스토랑을 나왔다. 여기서 이루카는 사소한 의문을 느꼈다. 남자가 계산하지 않고 레스토랑을 나서는데도 누구 하나 그를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되려 웨이터들에게 공손히 인사까지 받았다. 이루카가 작은 목소리로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으면 남자는 이 가게는 자신의 소유이며 연간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말로만 듣던 회원제 레스토랑. 그리고 이 남자는 그 레스토랑의 소유자. 그러나 이 레스토랑은 그가 가진 것들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레스토랑을 빠져나오자 입구에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주위로 몇 명의 직원들이 열을 지어 서더니 허리를 숙였다. 이루카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
이루카는 새삼 남자가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임을 실감했다. 동시에 자신이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깊은 회의감 또한 밀려들어왔다. 이런 평범한 사내 녀석을 데리고 애인 놀이나 하고 있는 남자가 갑자기 매우 언짢았다. 고급 자동차와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주었던 거북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처음 만났을 때 남자의 외관에 압도 당해서 바보처럼 굴었던 것이 이루카는 이제서야 몹시 후회되었다. 물론 늦은 후회였지만.
이루카는 울고 싶어졌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스스로 그렇게 설득하면서도 결국 이만엔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알바나 하고. 한 동안은 너무 바빠서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물밀듯 떠올라왔다. 안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다. 그냥 거절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이루카는 말 없이 차창 밖으로 사라지는 풍경에 시선을 주었다. 남자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해?"
"아뇨. 아무것도.."
"차 오래 타서 그런지 좀 피곤해 보이네. 밥은 먹을만 했어?"
"네. 맛있었어요."
그런데 왜 이 남자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즐거워하는 걸까.
남자의 차가 향한 곳은 한 고급 주택가의 카페였다. 남자는 아무래도 이곳에 볼일이 있는 듯 했다. 그의 차가 정차하자 발렛 하는 청년들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에게 인사하고 키를 받아들었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청년들은 허리를 굽실 거렸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봤던 광경인데도 적응할 수 없었다. 이루카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한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다섯시 십분. 자신의 일은 이제 끝났다. 무즈키 말대로 편한 아르바이트이긴 했다. 하루종일 공사장에서 삽질해도, 이만엔은 못받으니까. 고급 승용차를 타고 교외에 나가서 멋있는 식사를 한 것만도 어마어마한 행운 같은데 이만엔이나 받다니.
이만엔은 저 하타케 카카시라는 남자에게 얼마만큼의 가치일까? 분명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겠지. 이루카는 자조했다. 뭔가 기운이 빠져서 빨리 집에가서 다 잊고 편하게 맥주나 마시고 싶어졌다. 그는 카페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소매를 얼른 붙잡았다.
이 남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이대로 헤어질 생각인가? 계약 시간이 끝났으니 이제는 볼일 없다는 뜻? 남자가 왜 그러냐는 듯 뒤돌아보았다. 이루카는 심사가 꼬이려는 것을 누른 채로 인사를 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분에 넘치게 그런 훌륭한 대접을 받아 버려서..."
남자는 작별을 고하는 이루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얘가 갑자기 왜이러나 싶은 표정이었다. 이루카는 그 멍청한 태도에 저도 모르게 좀 화가나서 쏘아 붙이는 말투가 되었다. 이루카는 발렛하던 청년들처럼 굽신 거리면서 눈 앞의 남자에게 애교를 부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계약은 다섯시니까요."
"아..."
남자는 그제서야 이루카의 말을 이해하고서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아차 싶었는지 잘생긴 미간이 좁혀졌다.
"일당은 계좌로 넣어주세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이루카는 뒤도 안돌아 보고 돌아서서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이제는 영원히 안녕이다. 더 이상 불쾌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런나 애석하게도 이루카는 세발자국도 못가 남자에게 팔뚝을 붙잡혔다. 이루카는 밀려오는 짜증을 더 이상 참아주기 어려웠다. 이 불쾌함이 무의식 중으로 비져나온 자격지심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 채로 그는 휙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놔 주세요. 가야 돼요."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었어?"
그렇게 물을만도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얌전히 남자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 다녔던 녀석이 갑자기 반항을 하니까. 초조하게 묻는 남자에게 이루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남자가 이루카에게 잘못한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되려 분에 넘칠 정도로 과한 친절을 베풀었을 뿐이었다.
이루카는 분에 넘칠만큼 대접 받았다는 자각이 있었다. 요리는 맛있었고, 아마 평생 그런 비싼 밥은 못먹을 거였다. 솔직히 남자의 이야기가 재미 없었던 것도 아니야. 거기다 장단 몇번 맞춰준 것으로 돈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형편 좋은 일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못견딜 정도로 분한 것이다. 이루카는 이만엔은 돈으로도 안보일 남자가 고작 보통 사내애를 데리고 성심성의껏 애인 대접을 해주는 것에 경끼를 일으키고 싶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토할 것 같아......'
왜 이 남자는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지? 진짜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드디어 화가 폭발한 이루카는 오늘 처음으로 남자에게 속마음을 쏟아부었다. 어차피 알바 시간도 끝났으니까 상관 없다는 그런 충동적인 마음에서였다. 거의 화풀이였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원래 이러고 놀아요? 주말에 할일이 그렇게 없어서 대행사에서 애인 찾아서 비싼 밥 먹이고 잘해주고. 그 시시한 놀이에 장단 맞춰 주면 누구나 상관 없는 거? 이런게 재미있어요? 사람 무시해요? 돈 많이 준다고 해서 한번 해볼까 싶었던 나도 바보지만 당신 하는 짓 진짜 웃기네요!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면 이러지? 어차피 이제 안볼 사이니까 충고 한마디 하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 데리고 놀지 마세요! 돈주고 고용한 사람은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요?"
이루카는 쉴새 없이 쏘아 붙이고는 씩씩거리며 숨을 골랐다. 정신이 들자 이내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주변에 인적이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좀 말이 과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자 그대로 다시는 볼일 없는 사람이니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이루카는 여전히 제 팔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이것 좀 놓으세요!"
"....."
그러나 남자의 억센 손은 생각 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루카는 꼬인 심사가 더 꼬였다.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잔뜩 심술이 난 이루카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빈 손으로 뒷통수를 긁었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팔을 놔주지 않는 것을 보면 이대로 순순히 이루카를 돌려보낼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대신 그는 사죄의 말을 입에 담았다. 두번째 들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느꼈으면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설마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
"일단 안으로 들어가. 왜 불렀는지 가르쳐 줄게."
"싫어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그냥 오해한 채로 너 돌려 보내기 싫으니까 들어가자. 일, 시키면 되잖아....."
"....."
저 자세로 나오는 남자의 모습에 이루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은 남자를 뿌리치고 싶었지만 일을 시키겠다는 말이 이루카의 뒷통수를 잡아 끌었다. 남자가 이루카의 팔을 붙든 채로 카페 안으로 잡아 끌었다. 이루카는 더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들어갔다. 입구에서 한 웨이터가 카카시를 알아 보고서는 그를 안내했다. 여기도 필시 단골이거나 제 소유이거나 뭐거나 하는 가게일 것이다. 속이 메슥거렸다. 남자는 웨이터를 따라 성큼 성큼 걸어가면서 작게 말했다.
"앞으로 좀 불쾌할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한심한 꼴 보이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네."
물론 이루카는 그 말이 무슨 의미 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실내 중앙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그 공간에는 테이블이 하나 밖에 없었고, 누군가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라색 미니 드레스를 입은 갈색 머리 여자였다. 길을 걸으면 누구나 돌아볼만한 강렬한 인상의 미녀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먼저 시선을 주고 이윽고 이루카를 바라보았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루카는 소름이 돋았다. 쳐다보는 눈빛이 꼭 잡아먹기라도 할듯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루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 전에 느꼈던 짜증은 이 불안한 분위기와 잔뜩 화가난 여자의 기백에 진작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테이블 근처로 다가갔다. 마치 폭풍전야다. 그는 이루카를 바라보며 조금 망설이는 듯 뜸을 들이더니 여자에게 이루카를 소개했다.
"인사해. 내 애인이야."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여자가 벌떡 일어나 오른손을 휘둘렀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여자의 시선이 다시금 이루카를 향해 서서히 꽃혀들어왔다. 무섭다. 이루카는 생각지도 않은 전개에 현기증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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