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이후로도 몇번인가 더 형사님들이 제 병실을 다녀갔습니다. 형사님들은 제가 뭔가 이야기를 걸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형에게 수사 내용 같은 걸 보고 하고 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일망타진했다는 그 조직에 관한 것이었을텐데 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사 내용만 조용히 듣고 있었어요. 물론 전 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냥 제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형이 일도 가지 않고 계속 제 병실에만 붙어있었다는 겁니다. 워커홀릭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사람이 말입니다.

지금 형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헤어지자고 한 주제에 이상한 사람한테 기대고, 하필이면 형이 수사중이던 형사사건에 연루되고, 병수발 비슷한 이런 뒷바라지까지 시키고 있는 저를요. 저는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아서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형의 잘생긴 옆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멍한 시선으로 입술을 꾹 다문채 형은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아직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환자 본인이 당시 기억이 희미하고, 이젠 괜찮다고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충격이 컸을겁니다. 발작이 잦아들때까지 당분간은 당시 기억은 떠올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또 주변 상황에도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신경써주셔야 합니다. 작은 충격에도 또 쇼크상태에 빠질 수도 있고요.”

의사선생님이 형과 제 병실을 드나드는 형사님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첫 피해자 조사 때 제가 발작을 한 뒤 형사님들은 의사선생님 방에 끌려가 아주 혼쭐이 났어요.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진단하기에는 마냥 불안하게 느껴졌나봅니다. 전 덕분에 제가 발작할 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발작 후에 절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던 걸 보면 분명 좋은 상태는 아니었을겁니다.

형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요.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주면 안된다고 해서 싫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발작 때 저를 꽉 안아주는 것도 제가 평소에 형이 그렇게 해주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죠. 최대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지금 잘 하는 것이 중요하댔거든요.

전 부모님도 없고 친척도 없이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저만 간신히 살아남았어요. 다행이 부모님의 은사님이 흔쾌히 후견인이 되어주셨고, 제 앞으로 남은 유산도 많아서 생활이 어렵다거나 하진 않았지만요. 어쨌든 이런 큰 일이 났을 때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저를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형은 그런 저를 늘 안쓰럽게 생각했어요. 어쩌면 지금도 자신이 아니면 절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거라면서 쓸데 없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 이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았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고는 마이너스로 처박히기만 했어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서요.

사실 형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제는 별로 상관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지금까지 제가 해야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 하나 뿐이었어요. 다시 잘해보자는 그런 의미의 용서를 구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헤어지자고 했던 거 라던가, 싫다고 했던 것, 형이랑 있어서 힘들다고 말했던 것,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거짓말이었다고 말할 생각도 없었고요. 그냥 그렇게 상처주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전 아직까지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어요. 말할 용기가 없었다기 보다는 형에게서 흐르는 분위기가 그런 걸 말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형은 넋을 빼놓고 있는 때가 많았어요. 미친 사람처럼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한 자세로 어디론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고요. 제가 발작할 때가 아니면 제 몸에는 손끝하나도 대지 않았습니다. 병실 멀찍이 떨어져서 표정 하나 없이 있는 형에게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급성 약물 중독에 시달렸던 제 몸을 조사하거나 발작에 대한 경과를 지켜보는 시간은 정말 지지부진했습니다. 매일 정기적으로 피검사 같은 걸 했고 정신과에 가서 상담같은 걸 받기도 했습니다. 퇴원해도 좋다는 허가가 나온 건 발작이 꽤 많이 잦아진 무렵이었어요. 아직 피 속에 약 성분이 다 빠지지 않기도 했고 하루에 한번씩은 공황에 빠져 과호흡을 하거나 했지만 아주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오전에 의사선생님 방에 불려간 형은 혹여 발생할지도 모르는 응급시 대처 방법이나 제세동기 사용법같은 걸 배워왔습니다. 형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든 상관 없는 일 같아서 굳이 말하진 않았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온 저는 자리에 멈춰서서 내리쬐는 햇볕에 손으로 눈가를 가렸습니다. 입원해 있으면서도 가끔씩 산책을 했지만 사복을 입고 있으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저보다 몇발자국 앞서 걷고 있었던 형이 멈춰 선 저를 눈치 채고는 뒤돌아 섰습니다.

저는 형을 응시하면서 메인 목으로 마른 침을 삼켰어요. 이제는 말해야 했습니다. 형이 진짜로 가버리기 전에요. 형은 저를 향해 있긴 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절 바라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면 얼굴쯤은 보여줘도 되잖아요. 야속했지만 그걸 탓할 시간은 없었어요.

“형...”

긁히는 목소리로 간신히 형을 불렀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더 하고 말을 더 이으려던 참이었어요. 돌연 성큼성큼 다가온 형이 제 빈손을 움켜쥐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억지로 잡아 뺄 수도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제 손을 잡고 있었어요. 마치 제가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요. 손을 놔 달라고 하면 놓아 주었을까요? 묻지 않았으니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잡는 손이었어요. 저는 하려고 했던 말도 잊고서 앞서 걷는 등을 바라보았습니다. 택시를 잡아 탔고, 형의 아파트에 도착해 제가 집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형은 잡은 제 손을 놓지 않은 채였습니다.

어둑한 현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신발장 근처였습니다. 전 이 신발장 옆에서 오지 않는 형을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기대 잠들기 일쑤였어요. 얼굴을 기대면 무슨 촉감인지, 온도는 어떤지, 목재의 나이테가 어떤 모양인지 잊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왜 저는 그렇게 외롭다고 생각했었을까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형이 감기걸리게 왜 이런데서 자냐고 타박하면서 저를 이불속에 말아 넣고 식은 몸을 데워줬을 때 기쁘고 좋았던 건 왜 잊고 있었을까요.

등 뒤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저는 이끌리듯 거실로 들어섰습니다.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었던 거실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장식장에 올려져 있었던 물건들은 온통 바닥으로 쏟아져 있었고, 금이 간 TV 화면 아래에는 크리스탈 재떨이가 담뱃재를 흩뿌린 채 나뒹굴고 있었어요. 제가 아저씨 취미라며 놀렸던 고가의 분재들은 쓰러져서 뿌리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고요. 집안 곳곳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소주병들 중에는 벽에 맞고 완전히 박살이 난 것도 있었습니다.

“.....집에 온지가 오래되서 못치웠어. 미안하다.”

갑자기 등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라서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던 형이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건 그때였어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단단하게 바닥을 지지하고 있었던 무릎은 널부러진 채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바닥을 짚은 큰 손도 마찬가지였어요. 쿵 하는 큰 소리가 났는데도 형은 악소리 하나 지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형의 어깨도 어느새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요.

“.....큭.”

처음에는 작은 흐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흐느낌이 목놓아 지르는 비명으로 바뀌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으아아아아아--------....으아아---------!!!”

형이 주저 앉은 목재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그것은 분명 눈물이었어요. 하지만 그건 우는 소리라기 보다는 피맺힌 절규에 가까웠습니다. 형은 등과 어깨를 구부리면서 오장육부가 다 비틀어진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어요. 단지 슬퍼서만은 그렇게 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당장 세상이 무너진대도요.

저는 가만히 서서 처음으로 보는 형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무릎 위에 꽉 쥐어져 있는 형의 주먹 뼈마디에 앉은 딱지가 문득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형이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에 제 옆을 지키고 있었던 형사님이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저는 정신을 잃은지 삼일만에 발견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형사님들은 제 얼굴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형의 업무 책상 위에 제 사진이 있어서, 형사님들 뿐만 아니라 서 사람들 대부분이 절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자애인이니까 전 형이 제 이야기를 안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귀여운 애인이 있다고 팔불출마냥 자랑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그때 저는 실종자 신고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집에도 없고 갈만한 곳을 찾아도 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발견될 리 없었죠. 핸드폰은 바 안에 남아있던 제 외투에서 나왔으니 위치 추적도 불가능했습니다.

사실 저도 성인이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했을 수도 있는 거였는데 형은 기어이 실종자 신고까지 해 놓고 막바지 진행중에 있던 수사와 실종자 수색을 병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3일 내내 잠도 안자고 돌아다녔다고 했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해만 져도 위험하다며 외출은 안된다고 펄쩍 뛸 만큼 과보호가 심했던 사람입니다.

“서, 선배님!!! 잠깐만 이리로 와보세요!!”

하지만 그런 형도 설마 제가 인신매매 조직에 붙잡혀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실종자 수색을 해도 쉽사리 행방을 찾기 어려웠던 저를 설마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사건에서 발견하게 될 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을거고요. 절 처음 발견 했던 건 형의 동료 형사님이었어요. 형은 조직의 간부들이 연행되는 것을 감독하다가 동료 형사님의 부름에 그제서야 피해자들이 있던 그 빨간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매음굴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던 그 공간에서 형이 가장 처음 보았던 건 전라인 채로 팔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고 있는 저의 모습이었어요.

“이, 이루카?”
“....”
“너 왜 여기 있어? 어?”
“.....”
“정신 좀 차려..!!”

하지만 그때 전 어떤 반응도 돌려 줄 수 없었습니다. 눈을 뜨고 있긴 했는데 동공은 풀려 있었고, 입꼬리는 웃고 있는데 그 입가와 눈가로는 침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거든요. 뭔가 이상한거라도 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피부는 백짓장보다 하얗게 질려 온 몸은 약하고 강한 경련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땀에 절어 목을 휘감고 있었던 제 긴 검정색 머리카락이 불길함의 상징 같아 보여서 자신까지 무서워졌었다고 형사님은 회상했습니다. 어쨌든 형이 절 안고서 그렇게 제 이름을 부르고 소리를 쳤다는데 전 그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선배님 응급차량 도착했습니다!”

다른 몇명의 피해자들과 함께 저는 응급차량에 실렸습니다. 그 중에는 멀쩡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 제 상태가 제일 심각했던 것 같아요. 발작이 시작되고 응급병동에서 중환자실로 실려가는 제 모습을 응시하면서 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어쨌든 제가 사라진 중환자실 문 앞에 서 있었던 형이 뒤돌아 향했던 곳은 서 유치장이었습니다.

유치장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간 형이 다짜고짜 주먹을 뻗은 건 연행되어 온지 얼마 안되는 그 조직원들이었어요.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소리 하나 내지 않은채로 수갑에 손이 묶인 그 사람들을 구둣발로 차고 패는데, 서 전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져서 비명소리랑 뼈 부러지는 소리 밖에는 나지 않았답니다.

형사님들은 처음에는 그런 선배가 무서워서 말릴 생각을 못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그런 선배가 불쌍해서 말리지를 못했대요. 매일 술 마시고 서에 기어들어와서는 빈 유치장 의자에 누워서 자던 모습이 생각나서요. 카이타니 케이치는 형사님들이 형을 말리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장이 일부 파열된데다 오른쪽 다리랑 갈비뼈 세개가 골절됐고 왼쪽 어금니가 전부 나갔다니까요.

하지만 사정이 어찌됐든 형사가 이미 유치장에 같힌 범죄인들을 그렇게 패 놨으니 당연히 문제가 됐습니다. 난동을 피운 형은 반나절 정도 취조실에 연금되었다가 기어이 한달 정직 처분을 받았어요. 형이 제 병실에 계속 있을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다행이 그 정도 처분으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형사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크흑.....큭......”

제가 너무 힘이 들어서 형이 저 때문에 괴로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이었는지요. 언제나 강했고 제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던 사람이 주저 앉아 목놓아 우는 모습은 작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어요. 형이 이런 모습이길 원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어요. 헤어지고서 느꼈던 아픔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요.

형의 앞으로 다가가서 웅크린 어깨에 손을 뻗으면 제가 형을 잡기도 전에 먼저 형이 제 몸통을 끌어 안았습니다. 제 심장께는 뜨거운 눈물로 순식간에 젖어 들었어요. 형은 제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제 형태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끊임없이 뒷목과 등을 더듬어 안았습니다. 떨리고 있었던 것은 무릎이나 손 뿐만이 아니었어요. 온 몸을 덜덜 떨면서 형은 무서운 거라도 본 사람처럼 굴었습니다. 이윽고 쉰 목을 긁고 나온 울음 가득한 목소리가 제 심장을 사정없이 할퀴고 갔어요.

“잘못했어. 내가.....다 잘못했어.”
“.....”
“내가 다 잘못했어.”

형은 무작정 제게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형은 자신이 했던 행동 그 모든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었어요. 왜 너를 좀 더 빨리 찾지 못했을까, 아니, 아예 너를 놓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형을 정말로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 것 같아서, 찾아가기가 너무 무서웠다고 형은 말했습니다. 저는 미안하다고 무조건 잘못을 비는 형의 은색 머리를 양 팔 안에 가두었습니다. 형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는데 왜 형이 잘못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목에부터 무엇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는 안은 은색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뭍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왜 그렇게 오기를 부리고 괜찮다며 강한 척을 했는지, 그때의 저를 만날 수만 있다면 정신 차리라고 엉덩이를 차주고 싶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
“다시는 안그럴게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 허리와 등을 감고 있는 팔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형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울었어요. 간신히 진정이 된 후에도 우리는 계속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주변으로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했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이 없었습니다.

“나 미워하지마. 싫어하면 안돼.”
“.....안 미워해요.”
“너 죽는 줄 알았어.”
“....안 죽어요.”
“너 잘못되면.....너 없으면 나 죽어.”
“......”
“.....나만 놔두고 혼자 어디 가버리면 안 돼.”

그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과로를 반복했던 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깨우기 싫어서 저도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은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형의 머리에 볼을 맞댄채로 눈을 감았습니다. 형의 팔 안은 여전히 따듯하고 안심이 되었어요. 저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 보면 안방 침대 위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절 안고 있던 형의 어깨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눈부셨습니다.

방 안은 평온했고 조용했어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요. 저는 폐 깊은 곳까지 공기를 들이마셨다 천천히 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주 길고, 지난했던 꿈 속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Epilogue



형의 집으로 돌아오고서 며칠 지나지 않아 야마토가 절 찾아왔습니다. 형은 현관 앞에 서 있는 야마토를 한참 쏘아보고는 싫어하면서도 외출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형은 여전히 근신중이었어요. 덕분이라고 하긴 뭐한 일이지만 어쨌든 매일 같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씩 과호흡이나 악몽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형이 있어서 다행이 심각한 문제에 빠지는 일은 없었어요.

“.....몸은 좀 괜찮아?”
“응.”
“아픈데는 없고?”
“응.....없어.”

아파트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아서 안부를 묻는 야마토에게 괜찮다고 웃어 보이니 야마토는 그제서야 굳어있던 입가를 풀고 우는 듯 웃으며 얼굴을 왜곡시켰습니다.

내가...!! 내가 계속 옆에 있었으면....!!

제 앞에서 한바탕 통곡을 했던 건 비단 형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깨어난 병실에서 야마토는 무릎을 꿇고 찬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건물이 무너질 듯이 울고 있었어요. 형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가 잘못한거라며 자책하고 또 자책하면서요. 형은 그런 야마토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곱씹어 보면 형이고 야마토고, 정말이지 그런 얼간이들이 없었습니다. 야마토도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서는 시종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가곤 했거든요. 두 사람이 저 때문에 사이가 나쁜 건 사실이었지만, 아마도 서로가 너무 닮은 구석이 많아서 더 싫어하는 걸 겁니다.

야마토는 아이스커피를 쥐고 의미 없이 얼음을 흔들고 있었고 저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잘 몰랐는데, 그냥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형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야마토가 형이랑은 또 다른 의미로 제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환각 속 천국 꼭대기에 형과 함께 야마토가 있었던 건, 분명 그래서였겠죠.

아직 야마토랑 마주 앉은지 삼십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형이었어요. 왜 빨리 안오냐고 그런 새끼는 신경쓰지 말고 놔두고 오라고 닥달을 해대는 형의 목소리가 새어나가고 야마토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구겼습니다. 정말로,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장면이었기 때문에 그리움마저 느껴졌어요. 형과의 통화를 마치면 야마토는 분한 듯 이를 악물고 말했습니다.

“.....원래는 내꺼였는데 그 새끼가 훔쳐 갔던 거야.”
“.....”
“내꺼니까, 절대로 손 대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아마도 수사 때문에 카카시형을 처음 알게 된 그때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형에게 접근하기 전부터 형은 제 얼굴을 알고 있었다고 해요. 일 이야기를 하는 겸 만난 술자리에서 야마토가 제 이야기를 했대요. 술에 진탕 취해서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도 자랑삼아 보여주고요.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초면인 형사님한테 그러는게 말이 되나요. 팔불출인 것까지 형이랑 똑같아서 저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파트까지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바래다 주면서 야마토는 드물게 망설이며 운을 뗐습니다. 제가 빤히 시선을 주면 쑥쓰러운지 시선을 돌리고 짧은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말을 이었어요.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런 못미더운 새끼한테 널 보내는 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
“어?”
“....앞으로도 너 밥 먹이고 영화 보여주는 것 쯤은 해준다는 얘기야.”
“.....”

제가 자리에 우뚝 서면 야마토는 말 없이 제 손을 잡아 끌면서 앞서 걸었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걸 왜 계속 하려하느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 순간이 행복했거든요. 형한테는 비밀이지만요. 점점 아파트가 가까워져 오고 멀리에 저를 기다리고 있는 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야마토는 자리에 멈춰서서 천천히 제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가.”

야마토는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야마토를 뒤로하고 앞을 향해 달렸어요. 작게 보였던 형의 모습이 커지고 저는 있는 힘껏 그 목에 매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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