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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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킨 것은 수면제였을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거였을지도 모릅니다. 시야가 흐릿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힘도 죄다 빠진 것 같았습니다. 꼭 가위에라도 눌린 것 같이요. 머리가 무거웠고 몸은 뜨거운 공기에 휩싸여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낡은 침대 끄트머리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전 제가 침대에 누워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사실 방이라고는 해도 넓은 지하 공간을 천으로 대충 막아 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빨간색 어두운 조명이 아른거렸습니다. 방 안에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몇명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덩치 큰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얇은 천 너머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명이나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중에 케이치씨는 없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까맣게 문신한 팔이 저를 향해 뻗어왔다는 것은 생각이 났습니다. 다리 사이로 들어온 손이 시든 성기를 성의 없이 주무르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제가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사람의 체온마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제 몸은 비정상적인 열에 잠식되어 있었습니다.
“얘는 어떻게 한대?”
“몰라. 케이치가 오랜만에 괜찮은 거 하나 물어온 거 같긴 한데.”
“얘도 돌림빵시킬건가?”
“왜?”
“어차피 한번 돌려서 내보낼거면 지금 좀 해도 상관 없잖아.”
“아서라 새꺄. 보스한테 죽고 싶냐. 아직 뒤도 깨끗하고 어리고, 이 정도면 그냥 비싸게 팔 수도 있을거 같은데.”
“아 그냥 해본 말이지.”
제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이 무어라 말을 했습니다. 소리가 들려서 무슨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 내용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제가 여기에 있는 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공포같은 본능적인 감각조차 무뎌져서 그 낯선 사람들을 피해 도망쳐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선의 촛점은 여전히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고 마치 망막에 필름 여러장을 겹쳐 놓은 것 같았습니다.
“야, 얘 정신 났나 보다.”
머지않아 얇은 주사기의 날렵한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왔습니다. 침대 위 빈 공간에는 이미 다 쓴 주사기 서 너 개가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주사기 갯수만큼 반복된 그 퇴폐적이고 불건전한 장면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때 저는 얼른 주사를 놔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바늘이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온몸이 성감대가 된 것 같았고 절정일 때의 강렬한 쾌락이 손끝과 발끝에서 끊임 없이 밀려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는 기쁜 꿈들을 아주 많이 꾸었습니다. 처음에는 등에서 흰 날개가 솟아 올랐습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었습니다. 저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주 자신만만했고 언제 기력이 없었냐는 듯 힘도 세졌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흩어져 사라지고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천막이 걷히면 푸른 하늘이 펼쳐졌어요.
저는 도약해서 힘차게 밖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아주 높은 곳으로 가면 세상이 점처럼 작아 보였습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게 했던 모든 것도 그 점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마 천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속에서만 기억할 수 있었던 부모님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피가 낭자했던 새벽녘 그 국도 위에는 아버지의 검은색 승용차가 멀쩡하게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귀여운 들꽃이 피어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키스를 받으면 제 몸은 점점 더 하늘 위로 떠올랐습니다.
저를 스쳐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구름 층층마다 얼굴을 내밀고 기쁘게 웃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그런 옛사람들도 있었어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웠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미워하거나 원망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일방적으로 저를 고깝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손을 내밀어서 제가 좀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구름층을 지나 그 뒤로도 한참이나 더 높은 곳으로 날개짓을 했습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윽고 맨꼭대기에 다다라 바닥에 발을 뻗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맨 발바닥에 닿는 바닥과 주변을 떠도는 공기는 따뜻했습니다. 멀리에 익숙한 인영이 둘 보였습니다. 야마토와 카카시형이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두 사람을 향해 달렸습니다. 제가 손을 뻗으면 두 사람도 손을 내밀어서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싸울 것처럼 으르렁 거리던 사람들이었는데 여기에서는 날을 세우기는 커녕 아주 사이가 좋아보였습니다. 제가 야마토의 손을 놓고 형에게 매달리면 야마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제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습니다. 틀림없이 저도 웃고 있었을 겁니다. 절 바라보는 야마토의 표정이 아주 온화했거든요.
저는 고개를 들어서 카카시형의 얼굴을 응시했습니다. 아주 그리운 얼굴이었어요. 형은 무섭게 저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뭐든지 용서해 줄 것 같이 너그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원래도 제게 화라는 걸 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깨를 감싸 안은 팔은 여전히 단단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헤어지자고 해서, 싫다고 해서 미안하다고 지금이라면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입을 벙긋거렸는데 신음소리 하나 지를 수 없었어요. 그 사이 바닥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밑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었어요.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결국 형에게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닿지 않는 높은 곳에 형을 남겨둔 채로 저의 몸은 바닥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형의 모습이 점으로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었어요.
고통을 느낀 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통이 조여왔습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말하기는 커녕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고 매우 빠르게 뛰었습니다.
“허억!!”
들이마셔지지 않는 숨을 필사적으로 들이키면서 저는 눈을 떴습니다. 흰 천장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았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 둘이 발버둥치는 제 팔과 다리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꿈인지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어요. 나중에 안 것이지만 저는 쇼크로 인한 과호흡과 발작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천천히 호흡을 해보라고 외치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이미 제 몸이 아닌 것 같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뒤채는 것 뿐이었습니다.
기어이 기절해버리는 그 순간에 의사의 어깨 너머로 익숙한 은발이 보였던 것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고 있는 저를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형은 양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린 채였습니다. 뭐라 있는 힘껏 외치는 것 같기도 했고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번인가 발작을 반복했습니다. 피가 나올 때까지 구토를 하거나 거품을 물면서 깰때도 있었고 수천 수만마리의 작은 벌레들이 살갗을 찢고 나오는 환상을 볼 때도 있었습니다. 깨었다 기절하기를 반복하고서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때, 그제서야 저는 제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실에는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런 걸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는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가락과 고개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는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면 형이 제 머리 맡에 앉아 엎드린 채로 잠이 들어 있었어요.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은백색 머리카락을 착각할리 없었습니다. 밑도끝도 없이 저 심장 바닥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눈가로 밀려 올라왔습니다.
무거운 손을 들어 약간 뻣뻣한 은발 머리카락을 건드리면 형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는 소리도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어요. 저를 응시하는 블루 그레이빛 눈동자가 크게 떠지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형은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모르면서 입술을 벙긋거리다 의사를 부르며 밖으로 황급히 뛰쳐나갔습니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때 형은 아주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저는 급성 약물 중독이었습니다. 치사량을 넘은 약물 투여로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 자리에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요. 저는 그 이야기를 마치 남의 말처럼 듣고 있었습니다. 마약이니 중독이니,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분명히 죽을 듯이 괴롭기는 했지만 약이 보여준 환상 탓에 그 지하실에 잡혀 있었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사님 둘이 제가 있는 병실을 찾아왔습니다.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피해자조사였어요.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강력사건에 연루되서 이런 조사까지 받게 되다뇨.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저를 찾아온 두 형사님들 중 한 사람이 바 앞에서 형의 팔을 잡고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두 형사님은 복도에서 카카시형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고는 제게 말을 할 수 있겠냐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 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 형사님에게서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년도 더 전부터 형의 팀은 어떤 조직을 쫓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신매매 전문인 그 조직은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등 몇 년 전부터 세를 엄청나게 확장한 모양이었습니다. 사람을 납치해서 장기매매를 하거나 외국의 성매매 클럽에 돌리거나 성노예 시장에서 팔아 넘기는 일 따위를 하는 그런 조직이었어요. 마약을 이용해 약에 중독되게 만든 다음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약은 강렬한 성적 쾌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섹스중독에 빠트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워낙에 영악한 인간들이라 날고 긴다는 형사님들도 꽤 골치를 썩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던 바가 있던 그 일대로 조직원들이 숨어들었다는 정보를 캐고서 형과 형사님 몇몇이 잠입 수사를 시작한 것이 일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형을 만났던 그 즈음이요. 끈질긴 수사 끝에 최근 결정적인 실마리를 잡은 참이었고, 덕분에 저를 구할 수 있었다고 형사님은 말했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전 죽었거나 어디론가 팔려갔겠죠.
카카시형은 그 수사팀의 리더였다고 하니 아마 최근 계속 바빴던 것도 이 사건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날도, 분명 잠입수사 차 바에 왔었을 거고요. 형사님은 망연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게 면목 없다는 듯 뒷통수를 긁으며 카카시형과 자신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연기했었던 거라면서요.
저는 대답 없이 어느 순간부터 형의 지정석이 된 침대 끝 스툴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형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정신을 차렸을 때를 빼고 형과 저는 아직 제대로 얼굴조차 마주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저는 형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고 아마 형도 절 보기가 어색하고 그랬겠죠. 딱히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요.
당시의 상황을 묻는 형사님들의 질문에 저는 간신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가지 기억들을 더듬어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정확한 기억인지는 저 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요. 하여튼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형사님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제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때때로 필기도 하면서요.
물론 모두 변변치 않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카이타니 케이치라는 남자를 만났던 것, 키스를 하면서 구강을 통해 정체 불명의 약을 먹었던 것, 지하실 냄새가 났고 조명이 어두웠다는 것, 두꺼운 천으로 나뉘어진 좁은 공간 한가운데 누워 있었고 누군가 몸을 더듬었으면서 팔에 주사 바늘을 찌르고 갔던 것, 그런 이야기들이요. 당시를 떠올리면 문득 다시 구토감이 치밀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던 그 후유증이라는 거였어요. 팔과 다리가 덜덜 떨리면서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습니다. 숨도 잘 들이마셔지지 않았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과호흡과 부정기적인 발작이 원인이었습니다. 과호흡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발작이 동반되면 힘이 들었어요. 눈 앞이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고요. 형사님들이 놀라 머리 맡에 있던 널스콜을 눌렀고 조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눈꺼풀을 열면 형의 단단한 앞가슴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형은 제게 팔베개를 해주면서 어깨와 등을 꽉 끌어안고 있었어요. 형은 눈도 마주쳐주지 않았고 제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제가 발작을 하고 눈을 뜨면 꼭 이렇게 저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잃을 때마다 하루에도 몇번씩요.
그리웠던 온기였습니다. 환각을 보면서 느꼈던 그 따뜻한 공기랑 비슷했어요. 저는 제가 깬 걸 형이 눈치챌까봐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그렇게 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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