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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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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이루카를 빤히 바라보고는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루카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여자는 남자의 전 애인인 것 같았다.
'어쩌면 현재 애인인지도 모르지....'
이루카는 여전히 팔을 붙들린채로, 본격적으로 발발한 남녀간의 전쟁을 지켜보았다. 가히 누구하나 물러섬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카카시! 쇼하지마! 내가 널 몰라?"
"목소리 좀 낮춰."
"지금 내가 흥분 안하게 생겼어?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거야?"
"이제 그만 좀 해. 안지겹냐?"
따귀를 맞은 일 때문인지 남자는 명백하게 기분이 나빠보였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는 더욱 더 낮아졌고 마치 위협하는 듯이 날카로웠다. 더 대단한 것은 여자였다. 만약 남자가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분명 아무말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을테지만 여자는 기가 죽기는 커녕 더욱 더 기세 등등해졌다. 하긴, 이렇게 잘난 남자의 따귀를 때린 시점에서 여자도 보통 사람은 아닌게 분명했다.
"너야말로 안지겨워? 차라리 약혼을 하지 말던가! 아저씨 보기 죄송하지도 않아?"
“약혼을 내가 하고 싶어서 했어?”
충격. 여자는 애인 같은게 아니라 약혼녀였던 모양이다. 남자는 질린다는 듯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루카는 그런 남자를 힐끔 올려 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명백히 남자가 잘못한게 맞는 것 같은데, 남자는 뭐래도 좋다는 듯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루카는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걸 보면서 남자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번해 들어 갈아치운 여자만 열손가락으로도 세기 부족하다던지 하는 그런. 그래도 그때까지는 양호했던 남자의 이미지가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쉴새 없이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 아니, 어느 의미로는 이루카가 생각했던 대로의 남자이기도 했다. 이 정도 남자가 아니면 애인대행을 불러서 이런 아수라장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도대체 뭐 해먹으면서 살면 이 남자처럼 살 수 있을까. 돈이 많으면 정말 안되는 게 없는건가. 아니, 꼭 돈 문제만은 아니겠지.....이루카는 내심 기가 막혔다. 여자는 쉬지도 않고 남자를 나무랐다.
"약속시간에는 나타나지도 않고 갑자기 저녁에 보자고 미루더니, 그 사이에 뭐한거야? 같이 쇼해줄 사람 찾은거야? 그럼 제대로 좀 구하지 그랬어? 하다하다 못해 이젠 게이쇼라도 할 모양인데, 어디서 이런...."
아무래도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끝내려고 이전부터 계속 무슨 '쇼'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쇼'가 여자에게는 절대 먹히지 않았던 거고.
이루카는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남자가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여자와의 약속을 미뤘던 것이 틀림없었다. 하타케 카카시가 그때 변덕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루카는 곧장 이여자를 만나서 그의 애인 노릇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곧 같이 고급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그의 자동차로 드라이브 비슷한 것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루카는 이 하타케 카카시라는 남자에 대해 명백한 짜증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였나? 할수만 있다면 눈 앞의 여성처럼 싸대기라도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짜증도,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혐오감 어린 시선에는 순식간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이젠 알바비고 뭐고 아무래도 좋으니, 당장이라도 도망쳐서 집으로 가고 싶었다. 애초에 왜 안하던 짓을 해서 이런 아수라장에 자신이 있는 것인지도 후회가 막급했다. 약혼녀를 차기 위한 쓸데없이 돈만 있는 바람둥이의 놀음에 왜 자신이 끼어있는 것인가. 명석한 여자는 그것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다.
여자의 의문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메이커도 없는 낡은 청바지와 널널한 폴로셔츠에 스니커즈 차림. 이루카는 영락없이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그 때문에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붕 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상류세계의 정점에 서 있을 남자와 아무데나 굴러다닐 것 같은 자신이 가당키나 한가. 앞에 있는 여자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와 이루카가 애인 사이라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필경 생각이 없던지, 아니면 정신이 나갔던지 둘 중에 하나였다.
이루카는 자신을 난감한 상황에 처한 남자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자신의 진짜 할일이었음을 알자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했다. 아무리 애인대행이라지만 분수에 맞지도 않는 식사를 받는 것은 이루카에게는 명백한 죄책감이었다. 이루카는 입을 꾹 다물고 견뎌내 볼 생각이었다. 이거라면 당당하게 알바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의미 없이 서로를 몇번인가 더 들볶았지만 이루카는 그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했다. 자신이 알아봤자 별로 쓸모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냥 사랑 싸움 같은데 얼른 화해나 했으면.
(아.......집에 가고 싶어.)
"너!"
이루카는 시종 고개를 숙인 채 정신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 여자가 자신을 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저요?"
"그래, 너!"
이루카는 바싹 얼었다. 여자는 그런 이루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이번에는 공격의 화살을 이루카에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너 뭐하는 애인지는 모르겠는데, 순진하게 생겨서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니? 이런 썩은 녀석이랑 어디서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 이 자식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진짜라고 착각하면 오산이야!"
“......네?”
솔직히 여자한테 쥐 잡히듯 잡힐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여자는 마치 이루카를 훈계하려는 투였다. 아무래도 여자는, 이루카가 애인대행으로 나온 아르바이트생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이루카 역시 이런 남자가 애인대행까지 써가면서 약혼녀를 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이루카는 그제서야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 여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루카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말투 속에서 자신을 향한 약간의 상냥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곧고 섬세한 눈동자를 가진 여성의 눈빛에 이루카는 무심코 감탄했다. 기세만큼은 호랑이 저리가라 할 정도였지만 이루카가 남자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한 여자는 이 어린 남자애가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걱정인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다. 이루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는 분명 이루카보다 연상으로, 남자와 비슷한 또래인 것처럼 보였다. 어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신 성숙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진한 화장에도 불구하고 악독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오밀조밀하고 화려해서 되려 그런 화장이 잘 어울렸다. 170cm 정도의 큰 키에 보기좋게 날씬한 몸. 화를 내고는 있지만 분명 평소에는 상류사회의 고상함을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 하타케 카카시는 이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난리를 칠까. 두 남녀는 보는 사람이 화가 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여자는 얌전히 혼나고 있는 이루카를 보고서는 이번에는 숫제 달래는 투로 말했다. 분명 이루카가 불쌍해 보였던 것이 틀림 없었다.
"너 정말 이 인간이 좋아서 여기 따라나왔니?"
"저는...."
자신에게까지 발언권이 돌아올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루카는 잠시 당황했다. 불안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자신의 차례인 것 같았다. 이루카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여기에서 진실을 말한다면 분명 여자는 상냥하게 이루카를 보내 줄 것이었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뒷일은 이루카의 소관이 아니었다. 하타케 카카시가 이 여자한테 더 얻어 맞든 말든, 결국에는 여자에 못이겨서 결혼 당하든 말든.
"저, 저는...."
두 사람의 날카로운 시선이 온몸으로 와서 박힌다. 솔직히 타인의 주목에 약한 이루카로서는 견딜 수 없는 시추에이션이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이루카는 어떻게 해서든 제정신을 차리려고 필사적이었다. 어떡하지. 이루카는 하타케 카카시에게 시선을 주었다. 남자는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초조함을 띄고 있었다. 순간 이루카는 자신이 이 하타케 카카시의 생사여부를 쥐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여기에서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이루카는 순식간에 이 상황을 정리해버릴 수도 있었다.
남자에게 주었던 시선을 돌리면 바로 정면에 여자가 있었다. 처음 보는, 너무나 무서운 여성. 그래도 상냥하고, 필시 어디에 가든 주목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루카로서는 제 평생 연이 없을 것 같은 여성인데 저 남자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알면 알수록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남자가 못마땅했다.
이루카는 오늘 하루종일 남자에게 졌던 빚을 생각했다. 아무리 부자의 놀이라지만 그런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이루카는 뻔뻔하지 못했다. 이건 이루카로서도 굽힐 수 없는 자존심 문제였다. 이루카는 자신이 알바비로 받아야 할 이만엔도 떠올렸다. 여기에서 자신이 애인대행 업체의 사람이라는 걸 밝혀버리면 이만엔은 못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만엔이면 그래도 다음 알바비가 나올 때까지는 나름의 여유를 안겨다 줄 돈이었지만.
하지만 이만엔 때문에 눈 앞의 상냥한 여성을 속여야 하나? 이루카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활이 아무리 빠듯해도 적어도 남을 속이면서 살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만엔을 못받아도 손해는 아니었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드라이빙이라는 것도 해봤고, 앞으로는 평생 구경도 못할 것 같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다.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이만엔은 가뿐이 넘을만한 것들이었다.
고용주라고 할 수 있는 남자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솔직한 것이 남자에게도 더 좋을 터였다. 기는 좀 세보여도 저런 좋은 여성을 피앙새로 둔 것도 남자에게는 훌륭한 복이라고 이루카는 생각했다. 제멋대로인 남자에게는 저 정도 되는 여자가 아니면 안되겠지. 이루카는 그렇게 납득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에라 모르겠다.
“저, 저는.... 애인대행 업체 사람이고요....”
주변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이루카는 차마 여자도, 남자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고 갈증이 났다. 침묵이 괴로웠지만 이루카는 느낀 바를 솔직히 말했다.
“그, 그러니까, 싸우시지 말고 화해하셨으면 좋겠어요.”
“........”
잡힌 팔에서 남자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루카는 남자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남자로서는 난감한 상황임에 분명했다. 어떻게든 약혼자에게서 벗어나려고 사람을 고용했는데 이렇게 파토내고 가버리다니. 하지만 한편으로 그 잘난 남자가 곤경에 빠진 것이 통쾌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원래 목적도 아니었던 일을 쓸데없이 자신에게 베푼 것은 그저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자신이 한방 먹인거라고 생각하면, 이루카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졌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잘생긴 얼굴이 벙 쪄서 볼만 할 터였다. 비틀리려는 입술을 꽉 깨물고 이루카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는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이루카는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가게 입구를 향해 달렸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무시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둘러 지하철을 찾았다. 무사히 동네에 도착하고서야 이루카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날 저녁, 이루카는 맥주를 한캔 뜯어서 시시껄렁한 주말 드라마를 보았다. 하필이면 부자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신데렐라 이야기였다. 이루카는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낮에 보았던 은발의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이 가고 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약혼자한테 또 한대 맞았을까. 어디서 여자한테 맞고 다닐 것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여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은 결혼이라도 하는 걸까. 약혼한 사이니까 그렇겠지.
'좋겠다.'
이루카는 멍하니 채널을 돌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세계는 자신의 세계와는 너무 달라서, 현실감 있는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꿈 같은 무엇처럼 느껴졌다. 끝은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릴 것 같은 세계. 그저 살기 바쁜 제 한칸짜리 좁은 원룸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무궁한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는 있을 것 같았다. 이루카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마음 한켠이 쓰렸다. 그래도 자신으로서는 꽤 좋은 경험을 한 것이라고 그렇게 애써 우울함을 감췄다.
그렇게 그 은발 미남과의 일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것이 이루카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은 바로 다음날 밝혀졌다.
공과금을 내러 은행에 들른 이루카는 제 통장을 바라보면서 무심코 눈을 비볐다. 제 계좌에, 하타케 카카시의 이름으로 30만엔이 입금 되어 있었던 것이다. 통장정리를 안했으면 아마 계속 모르고 있었을 터였다.
자신의 통장에 찍힐리 없는 숫자에 이루카는 한참이나 통장에 찍힌 숫자를 세었다. 왜 이런 돈이 입금되어 있어? 애초에 파토내고 카페를 나온 시점에 이루카는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 남자가 있는게 돈 밖에 없어서 이루카에게 쓸데 없는 아량을 좀 더 베풀었다고 해도, 적어도 그것이 삼십만엔일 리는 없었다.
그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설마 복수인가? 나한테? 왜? 이루카는 멍청하니 눈을 깜박였다. 30만엔. 그건 이루카가 받기로 한 것의 열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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