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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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최근 일본 정부와 체결한 신형 전투기 사업 계획서를 보고 있었던 카카시는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팽개쳤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두어번 얼굴을 쓴 그는 습관적으로 시선을 돌려 책상 위에 올려진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원래 그는 그렇게 핸드폰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개 중요한 일들은 비서를 통해 연락받았기 때문에 사적으로 가지고 있던 핸드폰은 사실 장식이나 다른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뭐해? 짧은 문자를 썼다가 다시 지우기를 몇 번, 그는 끝끝내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카카시는 결국 핸드폰을 이루카에게 넘기는데 성공했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붙었다.

“주셨던거, 다 안 가지고 가시면 핸드폰은 절대 못받아요.”

원래 카카시는 이루카에게 넘긴 8개의 선물박스도 핸드폰도 회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어떤것도 받고 싶지 않아하는 이루카를 그가 이겨 넘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물러서기 어려운 선이라는 건 있었다. 그게 바로 핸드폰이었다.

야마토와 바네사의 말에 따르면 이루카는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이루카를 찾아가서 무턱대고 밥먹자고 끌고 나왔던 그 일요일은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루카는 너무 바빴다. 오전 일찍부터 외출했다가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규칙적이면서도 하드한 생활에 딸린 식구 많은 대기업을 경영하는 카카시조차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이루카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빽빽하게 아르바이트를 넣을 정도로 그렇게 일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루카의 성적은 사실 꽤 좋았다. 이번 학기에는 과 1등은 아니었지만 아마 꽤 많은 성적장학금을 받았을터였다. 거기다 잔돈에 연연하는 성격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원래 카카시는 이렇게 성급하게 이루카를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 이루카의 집에 무턱대고 찾아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시간을 가늠하지 않으면, 그냥 보통으로도 말 한마디 섞기 어려운 상대가 있다고는 알지 못했다. 그는 이루카에게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혀를 찼다. 요즘에는 유치원생들도 쥐고 다니는게 스마트폰 아니던가.

처음에는 이렇게 단순한 생각에서 구입해 보냈던 핸드폰이었다. 하지만 이루카의 스케쥴이 파악된 후에 그는 스마트폰을 사 보내길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루카가 싫어할만한 방식을 택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이런 방법 밖엔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겠다는 쪽지를 내내 무시했던 이루카가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사실 그는 전봇대에 범퍼를 박을 뻔 했을 정도로 놀랐다.

카카시는 경호원도, 운전기사도, 집으로 가서 쉬라는 야마토의 말도 다 뿌리치고 운전대를 잡은 참이었다. 그는 투덜거리는 이루카의 말을 들으면서 익숙해진 골목 어귀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에 앉은채로 이루카의 집을 올려다보면 작은 창문으로 하얀 형광등 불빛이 반짝였다. 그는 이루카가 이 시간이면 집에 있을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루카를 만나서 뭘 할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루카가 전화를 받을거라고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냥 얼굴이 한번 보고 싶었다.

바쁘면 바쁠수록 보고싶어진다니, 그런 느낌은 몰랐었다. 만날 수 없는 날이 계속 될 때마다 그는 신경줄이 바짝 깍여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개 업무가 끝나는 열한시마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매일 같이 쪽지를 써 보내고 전화를 걸었지만 수화기 건너편에 응답해 줄 이는 말이 없었다.

-전 댁이랑 연애같은 건 할 생각 전혀 없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리고 이 선물들 가져가세요. 저희 집에 그런 거 둘 공간 없어요.
“당장 연애하자고 이러는 거 아니랬잖아. 그리고 물건 회수는 안해. 전화 안받은 벌이라고 생각해.”

그는 현관 바로 앞에 있는 난간에 살짝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귓가로 이루카가 쏟아내는 불만이 울려댔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일이 끝난 후 늦은 밤에, 카카시가 이루카의 집 앞에 차를 끌고 온 것은 사실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자택으로 가는 길을 약간 우회해서 골목길에 도착하면 이미 이루카가 잠이 들었을 한시나 두시 쯤이었다. 그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문에 기대서 담배 두대를 태우면 다시 자택으로 길을 잡았다. 물론 야마토는 경호상에 문제가 생긴다며 난색을 표하긴 했다.

당장이라도 문을 두드려서 이루카를 보고 싶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며칠이나 지나서야 겨우 한번 성공한 첫 전화통화를 그냥 접는 것은 아무래도 아까웠다.

-......이러다 제가 돈 바라고 막 들러 붙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이루카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돈에 얽매여준다면 이쪽은 차라리 대 환영이야. 이렇게 너 쫓아다니면서 애먹을 필요 없고.”
-........
“원래 돈이라는 건 많이 있으면 있을 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거야. 네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다 써도 좋아. 돈이라면 네가 평생을 길바닥에 뿌려도 다 못뿌릴 정도로 있어.”

그는 순간 이루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 집 제 방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상을 했다. 이루카의 성격에 추호도 어림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상은 멈춰지지 않았다. 못 놓겠다고, 이루카에게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문득문득 이루카의 입술을 가르고 그 안을 탐했던 때를 떠올렸다. 촉촉한 혓바닥을 문지르면서 입안 곳곳을 애무했다. 가파르게 오르는 숨을 다 집어 삼키면서 그는 꽤 오랫동안 그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루카는 키스가 서툴렀다. 그러나 그는 뚫려 있었던 어딘가가 빠듯하게 메워져 오는 충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른 남짓 살아오면서 제게 존재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결손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그때서야 알았다.

-.......여보세요.

세 번째 전화시도 끝에야 수화기 너머로 이루카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목까지 메였다. 삶이 직소처럼 빈틈없이 짜맞추어진 작품 같은 것이라면 그 유일하고도 중요한 마지막 퍼즐이 수화기 건너편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답지 않게 들떴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열심히 말을 짜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여전히 고역이었다.

“내 이름은 하타케 카카시고, 서른 두살이고.....태어난 건 일본인데 별로 기억은 없어. 학교는 전부 미국에서 다녔거든. 싫어하는 음식은 튀김이야. 대부분 일식은 다 괜찮은데 튀김류가 많아서 먹기 힘들어.”

그가 뜬금없이 자신의 프로필을 읊기 시작했을 때 이루카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뭐예요 갑자기...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가르쳐 주는거야.”
-별로 몰라도 상관 없어요. 알고 싶지도 않고.
“나는 너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그런 이야기 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서른 두살이라니, 그렇게 나이 많은지도 몰랐어요.
“어려 보인다는 칭찬 고마워.”
-주책맞다고 욕한 거예요. 열 두살이나 차이 나잖아요. 완전 아저씬데.
“나 같이 멋지고 능력있는 남자는 원래 어린 애인 옆에 끼고 다니는거야.”

장난섞인 말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면서 푹신한 사무용 체어에 등을 기댔다. 의자를 회전시켜 뒤돌면 집무실의 큰 창 밖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카카시는 잠시간의 침묵을 즐기면서 지상에서 반짝이는 그 별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루카가 물었다.

-이번에도 전화 안받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글쎄....잘 모르겠는데.”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언제 전화를 하겠다고 전달했지만 그것은 거의 일방통보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전화를 받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무조건적으로 싫다고만 하는 상대를 설득하는 일은 과연 카카시로서도 힘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는 꽤 제멋대로 이루카의 일에 참견을 했었지만 사실 제 뜻대로 이루카가 움직여줬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또 찾아가지 않았을까.”

언제 어느 시점에 이렇게 빠지게 된 것일까. 셈에 능숙한 냉정한 머리가 그렇게 물었다. 그에게는 우미노 이루카라는 청년에게 느끼고 있는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적도, 누군가의 전화를 목빠지게 기다렸던 적도, 보고 싶어서 집 앞을 서성거렸던 적도, 손을 뻗어서 그 피부를 만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다.

이것처럼 바보 같은 일은 또 없었다. 이성적으로 그가 우미노 이루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득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서류상에서만 봐도 이루카는 구질구질한 삶을 살았던 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의 표면을 밟고 사는 칠십억 인구 중에서 오직 우미노 이루카라는 청년만이 그를 끌어 당겼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이루카의 집 앞을 서성이는 날이 늘어갈 수록 그랬다. 굳게 닫혔던 철제 현관이 열리고 오랜만에 보는 까만 눈동자를 응시했을 때 그는 제 등줄기를 쓸고 올라가는 뜨거운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소름과도 닮은 전율이었다.

-저는 싫어요.

이루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어금니를 씹어 물었다. 남들이 다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자만심은 가지고 살지 않았다. 힘을 가진만큼 적도 많은 카카시였다. 이루카가 자신을 별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시작부터 미덥지 않았던 만남이었다. 그가 가진 외모나 재력, 보이는 모든 호의는 이루카에게는 단지 경계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상대가 싫다면 카카시도 굳이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늘 우위의 입장에서 상대를 리드해왔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할리 없었다. 그러나 그 자존심도 청년의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 없었다.

연애라는 게 뭐야? 그는 자문했다. 청년에게 연애를 하자고는 했어도 막상 덤벼들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됐다. 스즈메는 카카시를 마치 아기자기한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이라도 된 것 마냥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적당히 나이 먹은 삽십대 남자였고 당연히 달달한 연애에는 큰 꿈이 없었다. 가진 것을 전부 내던지며 몸을 다 불사르는 듯한 연애도 철 모르는 스물 무렵에나 가능한 것이다. 연애라고 한다면 밥먹기, 차마시기, 섹스, 이 정도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이루카에게 그가 말했던 ‘연애’ 역시 이 범주에 있는 ‘연애’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상대가 어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몰라도 연락 한번 하는 것에도 일희일비 하고 있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이미 잠들었을 이를 창 밖에서 가늠하고 있었다. 한심한 일이었지만 이보다 더 한심한 것은 변변치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그만 두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 스즈메에게 그런 취급을 당해도 어쩔 수 없었다.

-끈질기는 말 많이 듣죠?
“쉽게 포기하는 건 싫어하지만 그래도 물러설 때는 알아.”
-지금이 물러설 때라고는 생각 안하세요? 연애 할 생각 없다는 거 이젠 말하기도 입아파요.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몇 번을 말하면 알아 줄래?”
-전화 안받으면 진짜 또 오실거예요?
“그럴 생각이야.”

사실은 벌써 몇번이나 그 원룸을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현관 안쪽을 생각했었다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이루카에게 들었던 주책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애가 닳아 있다는 것을 알릴 용기는 과연 그라고 해도 없었다.

전화 말미에 이루카는 말했다.

-전화 받기는 했지만 쓸데 없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왜 내가 싫은데?”

그는 물었다. 이루카는 카카시에게 싫다는 이야기만 반복했을 뿐 왜 싫은지는 정작 한번도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껄떡대는 개새끼라서요.

돌아온 답에 그는 쓰게 웃었다.

그래. 그럼 그냥 어디 지나가던 개새끼가 와서 껄떡대는 거라고 생각해. 어차피 나 너한테 신용도 바닥이잖아.

싫다고 그만 하라고 미운 소리만 해대는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했었지만.

-끊을게요.

카카시가 뭐라 더 하기도 전이었다. 전화는 뚜뚜 소리를 내며 10분간의 짧은 통화의 끝을 알렸다. 전화도 도망가듯이 끊는구나. 이상한데서 감탄하면서 전화가 끊긴 후에도 그는 기본 화면으로 되돌아간 핸드폰의 액정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연락 안받으면 또 찾아간다는 그 말은 꽤나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전화가 한번에 연결된 적은 없었다. 두 세번, 길면 다섯번까지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야 이루카는 망설이는 듯 수화기를 들었다. 대화는 끊기기 일쑤였다. 이루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딱히 리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짧은 통화시간은 거의 침묵으로 점철되었다. 전화가 마무리 될 즈음에 이루카는 언제나 ‘댁을 좋아하게 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지겹도록 들은 그 말을 꼬투리 잡아 몇마디 설전을 벌이면 그것으로 짧은 통화는 끝이었다.

이루카에게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는 열심히 말을 쥐어 짜는 참이었다. 취미는 뭐냐 좋아하는 음식은 뭐냐 가고 싶은 곳은 없냐 물었지만 이루카는 입을 꾹 다물고 어떤 것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런 건 보고서에 없었느냐며 비아냥 거렸을 뿐이다.

우기고 우겨서 이루카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이루카의 스케쥴을 파악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지만 정작 그가 이루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루카가 살갑게 저를 대할 것이라고는 기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뭘 했냐’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 조차 인색해 하는 상대의 모습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초조함을 타개할 방책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 채였다.

그냥 지금은 이루카가 전화를 받아준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작 전화 통화 몇번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욕심이 적은 편은 분명 아니었다.

뭐해?

그는 다시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메시지를 작성했다. 액정 위에 손가락을 헤매게 한 채로 몇번인가 더 망설였으나 마지막에는 기어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던지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보고 있던 서류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겉옷을 챙겨 집무실을 나왔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서에게 자택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곧 차를 대기시키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됐다고 손을 저었다. 경호팀 몇 명이 기어이 주차장까지 그의 뒤를 따라왔다. 요즘들어 혼자 운전하는 일이 많아진 젊은 회장님 덕분에 경호팀에서 난리가 난 사실을 카카시가 알리 없었다. 경호팀장까지 내려와서 오늘은 수행하게 해달라며 사정을 해댔다.

“야마토 상무님께서도 혼자 돌아가시게 하지 말라고....”
“야마토 상무가 그새 고용주로 신분상승이라도 했나? 미처 몰랐는데."

경호팀장은 왜 수행원이 붙어야 하는지부터 구구절절하게 그를 설득하다가 종국에는 야마토 상무의 이름까지 빌려왔지만 그의 고집을 꺽지는 못했다. 당황한 경호원들을 뒤로하고 그는 핸들을 잡았다. 최근 운전이 꽤 익숙해진 카카시였다. 이래저래 혼자 움직이니 편한 점도 많았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제가 운전을 해볼까 그런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는 자동차 창문을 반쯤 내리고 미적지근한 바람을 쐬었다. 땡볕인 시간은 지났지만 아직 날이 밝았다. 한적한 도로 위에서 그는 부드럽게 핸들을 꺽었다. 자동차의 방향은 너무 익숙하게 대학가 원룸촌으로 향했다. 이루카가 없는 시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루카가 있든 없든 그것은 별로 상관 없었다. 단지 담배 두대를 태우는 십 오분 남짓한 시간동안 이루카가 생활을 영위하는 그 좁은 공간을 확인하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번화가에서 좀 빗겨있는 원룸촌에 들어올 때마다 신기했던 것은, 이렇게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인데도 개미새끼 한마리 살고 있지 않은 듯 인적이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차를 세우고 문에 기대 담배를 빼 물었다.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걸 반쯤 다 태웠을 때 까지도 그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도 마찬가지로 죽은 듯이 조용했다. 어차피 답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가파른 동네 골목을 끙끙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던 낯선 청년이 매우 눈에 띄었던 것은 그 적막감 때문이었다. 청년은 짧게 친 검은 머리를 하고 브이넥 반팔과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루카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는 무심코 그 청년의 하는 양에 시선을 주었다. 청년은 양 손에 바리바리 든 커다란 마트 봉지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고 허리를 피다가 잘 빠진 고급 외제차와 빈틈없이 양복을 차려 입은 카카시를 보고서는 흠칫 놀랐다.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묘하게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카카시는 무심코 그 청년과 잘 닮은 제 부하 하나를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청년은 이내 다시 짐을 챙겨서 카카시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이루카의 원룸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는 청년을 보고서 그는 처음에 그냥 이루카와 같은 아파트 주민이겠거니 했었다.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든 청년은 굳게 닫혀 있는 원룸의 철제 문을 시원하게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카카시는 차에 기대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청년이 들어간 그 집은 이루카의 원룸방이었다. 이층 세번째 집.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지만, 그가 이루카의 집을 착각할 리 없었다.

청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들고 있던 짐은 이미 없었고 대신 누군가와 웃으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하하, 일단 고기만 냉동실에 넣어놨어. 문 잘 잠굴테니까 걱정.....”

청년은 현관 앞에 서 있는 낯선 사람의 그림자에 말을 줄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너 누구야.”

카카시가 턱을 약간 치켜들고 강압적인 투로 물으면 청년은 통화를 하고 있던 상대에게 ‘잠시만’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청년은 처음 보는 사람의 위압감에 처음에는 당황한 듯 했지만 골목 어귀에 주차되어 있는 외제차와 그를 번갈아 보고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데 탁월한 남자를 앞에 두고서도 꽤나 쨍쨍한 시선을 보낼 줄 아는 청년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그쪽이야 말로 누구십니까?”
“........”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지는 몰라도 이루카는 집에 없으니까 가세요.”
"너 누구냐고 묻잖아."

카카시를 어떤 사람이라고 착각했는지는 몰라도, 청년은 답하는 대신 얼른 현관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그 모습에 제가 방 안을 들여다 보기라도 할까 얼른 제 집 현관을 닫던 이루카의 모습이 겹쳐졌다. 카카시는 청년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내려 그 손에 들린 열쇠를 응시했다. 그는 제 앞에 있는 청년이 어떤 놈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이루카에게 방 키를 받을만한 놈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는 말 없이 손을 뻗어 청년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 채 귓가에 댔다. 청년은 그에게 덤벼 들면서 대체 뭐하는 인간이냐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건 제가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텐조 선배? 무슨 일이예요? 괜찮아요?

텐조라는 청년의 수화기 너머로 그가 잘 아는 듯 모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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