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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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업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이루카! 나 좀 살려줘!”
당장이라도 엎드려 싹싹 빌기 시작 할 듯 하던 이와시가 내민 것은 임무서 한장이었다.
“에?”
“이거 나 대신 처리해 주면 안돼? 제발! 한번만!”
아니나 다를까 이와시는 꽤나 다급한 듯 목소리 톤까지 높여가며 통사정을 시작했다. 일이 조금 꼬였는지 도저히 사람 찾으러 다닐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통상 다른 내근닌자들 보다 담당 업무가 많은 이루카에게까지 온 것을 보면 이미 여러군데서 퇴짜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모습이 딱하다고 동정해 버리고 마는 것은, 이루카가 이와시와 같은 내근직이기 때문이다. 이와시의 부탁을 거절했던 동료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언제 어느 때 동료에게 SOS를 치게 될 지 모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내근직이 상하를 막론하고 묘하게 단결력이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아. 이것만 전달하면 돼?”
“어? 어! 맞아!”
“나중에 밥 꼭 사라.”
이와시가 숫제 엉엉 울기라도 할 것 같아서 이루카는 얼른 임무서를 수중에 챙겼다. 아니나다를까 좋아 죽는다.
“이루카! 역시 쾌남! 잘생겼어! 멋있어! 사랑한다!”
“이게 징그럽게 왜 이래?!”
감동 받은 표정으로 와락 안겨오는 이와시의 턱을 밀어내면서도 나쁜 생각은 안든다. 어려우면 서로서로 돕고 사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 버리고 마는 이루카는 사실 사무에 관해서는 꽤 쓸만한 실력자였다. 손이 빠르고 실수가 없다. 여러 개의 일을 던져줘도 좌충우돌 곤란해 하지도 않는다. 지나치게 일을 잘하고 바지런한 탓에 되려 그것이 하드워크의 원인이 되고 있다. 거기에 애석하게도 챙겨야 할 가족도, 연인도, 취미도 없는 이루카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 편이었다. 물론 불과 얼마 전 까지의 이야기이다.
이루카는 막 사귀기 시작한 은발의 연인을 떠올리고 무심코 히히 웃었다. 옆자리의 상사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묻는다. 애인이 생겨서 그런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그냥요, 얼버무리며 자리를 털어 일어났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확성기에 대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요.
청사를 빠져나와 그 길로 향한 곳은 접수의 부속 건물에 있는 상닌대기실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달음박질치기 시작한다.
어쩌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지도.
바쁜 와중에 부탁받은 일이 귀찮게 여겨질법도 하건만 기실 이루카는 이 임무서가 꽤 반가웠다. 업무중에 애인을 볼 수 있는 당당한 구실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실에는 열명 남짓한 상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루카는 한번 깊게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이런저런 심부름으로 이따금 오는 곳인데도 올 때마다 긴장된다. 상닌 대기실을 이용하는 닌자들은 대부분이 전인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풍겨 나오는 카리스마같은 것이 있다. 상닌은 물론 때로 암부까지 맞이하는 입장이면서 역시 그들만의 공간이란 이미지 때문에 내근 닌자들에게는 어려운 곳이다.
임무서의 주인은 금방 발견 되었다. 어쨌든 커다란데다 굉장한 헤비스모커인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아스마 선생님.”
“아, 이루카. 안녕.”
소파에 큰 상체를 기댄 채 뻐끔뻐금 담배를 태우고 있던 남자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이루카는 곧장 그 맞은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카카시 선생님.”
“응, 안녕. 이루카 선생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이루카의 연인이다. 눈이 마주치자 날카로운 눈매를 부드럽게 접어 웃어 주었다. 살짝 접히는 눈꼬리가 매력만점. 복면 아래 보이지 않는 입술도 엄청 멋지게 웃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카카시는 드물게 손가락에 책이 아닌 담배를 끼우고 있었다. 반쯤 태운 담배에 얽힌 흰 손가락이 우아하고 멋있다. 솔직히 멋있는 점이 너무 많아서 일일히 설명이 불가하다. 하타케 카카시의 멋진점에 대해 논문을 써 오라고 하면 책 한 권은 거뜬히 쓸 자신이 있다.
아아, 안돼. 저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뻐서 금새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다.
이루카는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입가를 애써 꽉 다잡고 모르는 척 아스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것은 비밀인 상태이다. 이루카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알리면 손해를 보는 것은 100% 카카시 쪽이다. 애초에 카카시가 자신을 연인이라고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혹시 자신의 존재가 폐가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하면 물도 안넘어갔다.
‘일하자 일.’
카카시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이루카는 들고 있던 임무서를 아스마에게 건넸다.
“이거 댁으로 보냈는데 되돌아왔어요.”
“아아, 미안. 예정보다 귀환이 늦었거든.”
“그러면 좀 알려주세요. 접수소에 보고서도 내셨을 거 아녜요. 힘드신 건 알지만 담당자가 울면서 찾아다닌다구요.”
“귀찮아-”
말은 그렇게 해도 건네 받은 임무서를 꼼꼼히 읽기 시작하는 아스마는 상당히 빈틈없는 성격이다. 과연 상닌은 멋으로는 안된다.
“언제 귀환하신 건데요?”
“오늘 아침.”
이루카는 힐끔힐끔 옆의 기색을 살피면서 새 담배에 불을 붙인 아스마와 몇 마디 더 잡담을 시도했다. 아스마도 때마침 무료했던 참이다. 사실 이루카는 카카시도 같이 이 대화에 끼어주지 않으려나 약간의 기대를 했었다. 먼저 말을 걸어볼까? 하지만 공공연하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사귄지 한달도 되지 않은데다 연인사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탓에 대화거리가 더 궁해진다. 처음 본 사람하고도 줄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넉살이 좋은 주제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아니. 하타케 카카시 앞에 있으면 누구나 이럴걸?
‘이런 시간에... 점심은 드셨냐고 물어보는 건 좀 뜬금없나...?’
어쨌든 조금이나마 더 같은 공간에 있고싶다. 아까부터 카카시의 시선이 피부에 간지럽게 와닿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작은 컨택만으로도 기쁘다. 다행이도 아스마는 오랜 친분탓에 서로 허물이 없는 사이였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잃고 호카게 저택에서 지냈을때 친형처럼 이루카를 돌봐주곤 했었다.
“그럼 집에서 주무시지 왜 여기 계세요?”
“여기 있으니까 너도 덜 일했잖아. 우리집까지 왔으면 바쁜데 사람 귀찮게 한다고 잔소리 했을거면서.”
“그 정도까지 야박하지는 않거든요?”
상급닌자의 고충을 이루카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귀환의 때 조차 약속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일하고 돌아와서 ‘이번에도 안 죽었네.’라는 둥, ‘내 명줄이 생각보다 기네.’라는 둥, 무서운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면서도 줄줄이 이어지는 임무를 군소리 하나 없이 해내고 있으니 대단하다.
한편 이루카는 카카시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어서 내심 안달이 난 상태였다. 계속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었지만 망설임이 자꾸 방해를 했다. 어떡하면 좋느냐고 전전긍긍하면서 애꿎은 아스마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보니 문득 아스마의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처럼 보여도 어딘지 모르게 비치는 그늘은 숨길 수 없다. 이런 걸 보면 접수 담당자로서 좋은 소리는 안나온다.
“지금이라도 댁에 가세요. 다음 임무까지 시간 있잖아요.”
“드디어 잔소리꾼 등판이냐.”
“언제 잔소리를 했다고.”
“아, 몰라. 시끄러워. 집에 가기 싫어.”
“애예요?”
귀를 막는 아스마의 어린 태도에 카카시의 존재도 잊고 발끈하고 있으면,
“카카시. 뭐해?”
갑작스러운 여닌자의 등장으로 이루카는 순간 바짝 얼어붙고 말았다.
“바빠.”
“그거 한가하다는 얘기지?”
여닌자는 극히 자연스럽게 카카시의 곁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몇 번인가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다가 카카시 쪽으로 후 내뱉는다. 미간을 구기는 카카시를 보고서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기까지 했다.
그 여닌자의 존재라면 이루카도 알고 있었다. 미인에 실력도 있고, 시원한 성격으로 유명한 상닌이다. 카카시에게 자주 참견을 걸어오는 여성이기도 했다.
기실 사귀기 전에도, 그 후에도 카카시가 여성과 단둘이 함께 있는 장면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걸 목격할 때마다 이루카는 남몰래 속앓이를 했다. 카카시는 어느때고 남자 여자 상관없이 인기가 있다. 그 하타케 카카시니까 당연하다. 카카시를 좋아하는 이루카에게 있어서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지었만 알면서도 반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단 한가지, 그 여성들을 바라보는 카카시의 무심한 눈빛만이 구원이었다.
‘분명히 아사쿠라...상닌이었지.’
무심코 돌아볼 정도로 예쁜 사람이었지만 역시 반갑지가 않다. 아사쿠라는 차가운 태도에 주눅이 들지도 않고 카카시의 팔을 덥석 낚아챘다. 단련된 팔 위에 올려진 예쁜 손에 이루카는 심장이 철렁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됐어. 생각 없어.”
“왜? 아까 배고프다고 했잖아? 새로 생긴 가게 하나 있는데 거기 엄청 괜찮아.”
아직 점심 전이라는 말에 아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그제서야 후회가 됐다. 거기다 아무래도 카카시의 기분이 나빠보여서, 이루카는 그것이 또 마음에 걸렸다. 방금 전 기분 좋게 웃어 주었던 것이 거짓말같다. 카카시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카카시는 시선을 돌린 채 이루카 쪽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밥 좀 사.”
“저번에도 얻어먹었잖아.”
“잘 버는 사람이 좀 내면 어때?”
두 사람은 잠시간 의미없는 말싸움을 반복했다. 기분 나쁜 말싸움이 아니라 친구끼리 하는 것 같은 친밀한 말다툼이었다. 아무래도 이루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루카에게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루카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사실 카카시에게 여자랑 둘이서 밥 먹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용기 같은 것은 없고, 설령 지금 그렇게 카카시를 빼돌린다 해도 내일, 내일 모레, 글피 등등....닭털같이 많은 날들이 남았는데 매번 카카시를 채어 갈 수도 없었다. 카카시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다 커버하려면 하루종일 뒤를 따라다녀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무엇보다, 별로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아직 카카시의 인간관계에 가타부타 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았다. 어설프게 참견했다가 싫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견딜 수 없다.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이루카는 아스마의 시시한 농담을 들었다. 직업이 직업인 탓에 표정을 숨기는 것이 능숙하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할 때가 없다.
잠시 후 아사쿠라의 성화에 못이긴 카카시는 결국 이루카의 기대를 배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었지만 거기에 나쁜 기색은 없었다. 실망스럽지만 역시,라고도 생각했다. 여자와 함께 나가면서도 간다는 말 한마디는 커녕 끝까지 자신과 시선을 맞춰 주지 않은 것이 서운했다.
터벅터벅 청사로 돌아가는 길, 이루카는 대기실을 빠져나가던 두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일도 잊고 골몰했다. 화기애애하던 두 사람의 분위기나 대화를 떠올리고 마음이 아팠다. 적어도 현재의 이루카와 카카시에게는 무리한 대화패턴이었다. 이루카는 조금 우울해졌다. 오랜시간이 지나도 자신은 카카시와는 저렇게 친밀한 대화같은 건 못할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긴장해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형편이다.
어디에서 밥을 먹고 있을까.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밥만 먹고 바로 헤어질까. 되도록이면 무슨 말도 하지 말고 바로 헤어졌으면 좋겠다.
아마도 사귀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 두 사람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친한 친구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자신이 카카시와 사귀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밥을 먹다가 뭔가 아쉬워져서 차까지 마실 수 있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맞아서 손을 잡게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모텔에까지....그건 이루카에게 너무 가혹한 상상이었지만 생각이 자꾸 최악의 방향으로 치닫는 것은 막지 못했다.
애초에 카카시의 성애의 대상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왜 카카시가 흔쾌히 고백을 받아들였는지 이루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세간의 기준에 따르면 이루카는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보통 남자다. 웃으면 애교가 있다는 애기를 듣기도 하지만 실수로라도 외모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느냐고 궁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정작 이루카는 그 본인에게는 묻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았다. 만에 하나 ‘재미’라던지 ‘성욕처리’라는 답을 듣게 된다면 분명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버릴 것이다. 사실 이 문제에 한해서는 모르는 척 슥삭 덮어버리기로 이미 결정을 했다. 카카시는 상냥한 사람이고, 일단 사귀자고 해 준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어찌됐든 둘이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우선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화가 난거지...’
이것도 나름대로 궁리를 해보았는데, 어쩌면 상닌인 아스마에게 너무 허물없이 군 것이 거슬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급사회라 이런데 민감한 사람들은 상당한 비율로 있었다. 설마 그런데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는 좀 더 신경쓰자고 다짐하면서,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무거운 채로 이루카는 일에 복귀했다.
마지막 헤어짐이 어쩐지 미적지근했기 때문에 오늘은 만나지 못하려나 생각하고 있으면 퇴근시간에 맞춰 주머니에 진동이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진동에 이루카는 놀라면서도 반갑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지금 청사 뒤 공원 입구에 있어. 기다릴게.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아직 직장인 것도 잊고 울 뻔 했다. 연락을 해 주었다는 것 자체도 너무 기쁜데 기다려주겠다는 배려까지 느끼면 이제 속수무책이다. 여자와 밥을 먹으러 가던 카카시의 냉담한 뒷모습도 잊고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그 사람이랑은 정말 동료고 아무일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만나자고 문자도 주고 하는 거겠지.
이루카는 재빠르게 금방 가겠다는 답문을 썼다. 식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는데다가, 사실 이루카는 메세지를 주고 받는 쪽이 더 좋았다. 정말로 보통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두 사람은 일부러 인적이 뜸한 길을 돌아 집에 도착했다. 아직도 화가 나 있으면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카카시는 걷는 내내 별 말이 없었다. 화난 것 같은 태도도 아니었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드문드문 오늘 7반이 담당했던 잡초 베기 임무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잠깐 손도 잡았다. 기분탓인지 이따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에 관해서는 아무말도 듣지 못했다. 이루카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괜히 문제를 들쑤셔 구석에 몰리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척을 했다.
이루카는 일단 카카시를 욕실로 보내놓고 주방에 섰다. 최근 내용물이 풍부해진 냉장고에서 가지와 돼지고기를 꺼내 간장양념에 쟀다. 다행이도 카카시는 이루카가 차려 내는 요리가 마음에 드는지 무엇을 내놓아도 불평 없이 잘 먹었다. 요정의 고급요리에 익숙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보통 가정식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탈함에 더 좋아졌다.
적당히 간이 밴 재료를 정성스럽게 볶고 시간을 틈틈히 확인하면서 밥에 뜸을 들였다. 요리 과정 하나하나를 서투르게 넘기지 않는 탓에 혼자 먹을 때 보다 두 배는 족히 시간이 걸린다. 카카시가 먹을 음식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요리가 마음에 든다면 이런 것으로나마 좀 더 오래 카카시를 붙잡아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뭐....괜찮다면 몸으로라도.
밥상을 무르고 식후 차까지 다 마시면 자연스럽게 몸을 섞었다. 이루카는 습관적으로 허벅지를 대어 카카시의 하반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옷감 너머로 뜨겁고 크게, 제대로 발기하고 있는 성기의 존재감을 느끼고 안심한다. 카카시만큼 멋지게 단련된 몸도 아니고, 벗겨 놓고 보면 의외로 앙상한 편이라 카카시가 성적 욕구를 느껴준다는 것이 이루카는 아직도 마냥 신기했다.
남자지만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 주는지도 모른다. 사실이라면 이루카로서는 더 바랄게 없었다. 실제로 섹스만큼은 하루가 멀다하고 하고 있고, 색이 다른 눈동자가 정욕에 젖어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정해버리면 어쩌지 생각해버릴만큼, 이루카는 카카시와 살을 맞대고 있는 순간이 좋았다.
빈틈없이 몸을 맞대고 키스를 하면서 카카시는 묵묵히 이루카의 옷을 벗겼다. 물론 그와중에도 여전히 이루카의 작은 머릿속에는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카시를 붙들고 있었던 흰 손이 이상할 정도로 머리에 새겨져 버렸다. 딱히 무슨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말끔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카카시와 섹스를 하는 순간 무슨 일이든 아무래도 좋아지니까 이상하다.
“아스마랑 왜 그렇게 친해?”
아래로는 이루카의 성기를 만지면서 연신 목덜미며 귀를 깨물던 카카시가 물었다.
“아....예, 예전에 잠깐 신세,를, 으응,”
역시 아스마씨 문제였구나. 카카시가 망설이고 있던 말은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짙은 키스와 애무에 이미 반쯤 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이루카는 열심히 변명거리를 입에 댔다. 전에도 아스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카카시는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자신이 타당한 이유도 없이 아스마에게 격 없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신음으로 목구멍이 막히면서도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아아...그래.”
그런데 열심히 설명해도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영 미적지근 하다. 카카시는 이루카가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엎드리게 했다. 엉덩이를 들어올리게 한 뒤, 배 아래에 쿠션을 넣어준다. 이윽고 딱, 러브젤의 캡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루카는 두근두근 하면서 다음을 기다렸다.
“으.....”
“차가워도 조금만 참아.”
젤은 차가워서 느낌이 별로다. 그래도 카카시가 만져주기 시작하면 체온에 금새 뜨겁게 녹았다.
“헉, 하.. 이루캇, 윽...!”
“으..으응, 앗! 아! 아앙!”
뒷통수쪽으로부터 전해지는 거친 숨과 헐떡임이, 이루카로 하여금 섹스라는 것이 한 사람만 힘든 것은 아니라고 알게한다. 이즈음 이루카는 뜨겁고 단단한 것이 속을 잔뜩 들쑤셔대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카카시가 한 번씩 허리를 흔들 때마다 눈 앞에서 불꽃이 팡팡 튀었다. 거기다 빈 손을 앞으로 뻗어 다리 사이를 집요하게 문질러대고 있으니 이루카가 제정신을 붙들고 있을 확률이 더욱 더 낮아진다.
“허억, 너는? 후우, 뭐 나한테, 윽, 읏, 하고 싶은 말, 없어?”
“아, 앗! 아!! 아...! 하앙! 핫!”
눈물인지 침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땀과 함께 시트로 툭툭 떨어져 흘렀다. 카카시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뭘 말하고 있는건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몰려 있는 찰나였다.
물어뜯는 듯 한 기세로 삽입하고선 실컷 피스톤질을 하던 카카시가 사정도 하지 않은채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떼어냈다. 덕분에 절정으로 가는 쾌감에서 갈길을 잃은 이루카는 몸을 위축시키고 바들바들 떨었다. 괴로워서 울컥울컥 눈물이 났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몰라 당황하며 엎드린채로 고개를 돌려 카카시를 바라보았다. 계속 시트를 향해 있어 보이지 않았던, 붉게 달아오른 젖은 뺨과 뜨거운 열락을 담고 있는 눈동자가 고스란히 카카시의 시야에 들어왔다. 카카시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키곤 이루카의 어깨를 잡아 자신쪽으로 돌렸다.
“어? 궁금한 거 없어?”
“아...아,”
휘청이며 자세를 바꾸는 와중에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핏대를 세운 카카시의 성기가 보여서 이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 반도 만족하지 못했고, 밤은 멀었다. 카카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몰랐지만, 일단은 섹스를 다시 했으면 했다. 그런데 당장 자신을 어떻게 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에 새파란 욕정이 보이는데도, 카카시는 왜 가만히 있는 것일까?
“왜... 왜, 그러세...”
이루카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손을 뻗어 카카시의 어깨며 목을 매만졌다. 머릿속을 꽉채우고 있었던 잡생각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냥 하고싶다는 생각만 빠듯하게 들어 있었다. 드디어 그 바램이 통했는지 카카시가 상체를 휙 기울여 이루카의 위를 덮어왔다. 이루카는 쉽게 성기를 삽입할 수 있도록 다리를 더 벌려 자세를 고쳤다.
성기의 끝과 애널의 입구가 만나, 이번에는 천천히 밀려들어온다. 성기의 모양대로 몸이 열리는 감각에 살이 떨리고 자연히 고개가 뒤로 제껴졌다.
“이..루카!”
이제 카카시가 움직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자꾸 멈출까. 결국 이루카는 눈에 눈물을 한가득 담고 카카시를 올려다 보았다. 카카시 역시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다는 듯, 다급하게 아랫입술을 물고있는데도.
“아..., 왜, 왜...아, 카카시씨....”
“궁금한 거, 진짜 없어?”
‘궁금한거...’
이루카는 희뿌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카카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라면 많았다. 좀 더, 좀 더 계속 알고싶다. 어떻게 하면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는지부터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 전부. 카카시를 귀찮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사실은 물어보지 않고 덮어버린 것 투성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 여닌자랑 밥 먹으러 가서 뭘 했는지 하루종일 뭘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너무 간섭한다고 미움 받을 것 같아서 이루카는 절대 할 생각이 없었다.
설마 질투해줬으면 해서 이런 것을 자꾸 묻는 건가? 카카시가 오늘따라 너무 집요하게 구니까 잠깐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지만 그럴리가 없다고 금새 지워 버렸다. 카카시의 동료라는 사람에게까지 하나하나 질투를 시작하면 이루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아응... 읏.....”
거기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루카는 죽을 것만 같았다. 몸은 얼른 섹스를 하고싶다며 그를 보챘고, 빨리 카카시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했다.
자꾸 움직임을 멈추는데 안달이 나서 이루카는 뭉근히 허리를 돌리며 카카시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카카시와 1mm의 틈도 없이 완전히 밀착하는 순간이 행복했다. 비록 왜 카카시가 그렇게 자신을 복잡한 눈으로 보았는지는 잘 몰랐지만, 이루카는 일단 그 새로운 의문은 접어두어야했다. 내장을 찌르는 성기가, 아랫배를 만지면 만져질 것만 같았다.
“제길...!”
이루카가 흐느끼면서 모른다고, 빨리 해달라고 작게 도리질치면 카카시는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이루카의 허벅지를 쥐고 흔들었다. 예민한 곳을 강렬하게 파고드는 자극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정신을 완전히 날려버렸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아..! 아! 하악! 아, 앗!!”
가만히 있어도 녹아버릴 듯 아랫배가 뜨거워 미칠 것 같은데 힘으로 있는 힘껏 들쑤셔지니 앙앙 우는 소리를 내면서 필사적으로 카카시에게 매달리는 것 밖에는 못했다. 팔뚝을 잡으려던 손이 힘없이 자꾸 미끄러지자 카카시는 잡고 있던 허벅지 대신 이루카의 손을 움켜 쥐었다. 놓치기라도 할까봐 꽉 맞물려 잡은 손이 뜨거웠다.
이루카는 그래도 몰랐다. 왜 카카시가 오후 대기실에서 화가 났었는지, 왜 카카시가 이루카와 아스마의 사이를 캐물었는지, 왜 카카시가 자꾸만 섹스를 중단시켜가면서까지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응...으응.....아, 흐....아아....”
곧 카카시가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이루카의 내벽에 그대로 사정했다. 카카시의 것이 몸 속 깊은 곳에서 펄떡펄떡 맥동하고 있었다. 이루카는 눈을 감고 아랫배에 손을 올린 채 카카시의 흔적을 느끼며 천천히 그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벅차서, 더 이상의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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