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이루 사이트 만든 주제에 텐이루 피버...(웃음) 아직 이루카는 나오지 않지만 곧 등장합니다. 이루카 등장까지는 쓰고 싶은데 그 이후는 모르겠어요. 전래동화 너무 좋아합니다. 기력이 닿는다면 전래동화 이야기 시리즈 쓰고 싶어요.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랑 체력이 안받쳐 주네....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펼쳐서 읽어주세요
며느리 시험
저녁상을 무른 후 서재로 돌아가려는 야마토를 드물게 그의 아버지 하시라마가 붙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은 궁금증 보다는 묘한 반항심이 먼저 고개를 쳐든다. 안그래도 최근 때 늦은 질풍노도 한창인 야마토이기도 했거니와, 원래부터 아버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손 어찌 아버지 명령을 거스르랴. 하시라마는 아들에게 조차 가차없이 냉엄한 성격이고, 야마토 역시 괜한 성질 돋구워 화근은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 얌전히 아버지의 뒤를 따라 사랑채에 다리를 낮췄다.
두 부자의 사이는 데면데면 하다고나 할까, 정이 없다고나 할까. 기실 야마토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것은 하시라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즘에 와서는 언제 대화를 했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와의 대화라니, 그 내용을 전혀 예측 할 수 없어 조금 불안감이 솟는다. 책 잡힐 일은 하지 않았는데 뭔가 잘못한 건가 싶어지는 것은 아버지의 엄한 교육의 결과다. 어쨌든 따로 불려서 좋은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야마토는 여종이 가져온 국화차에 떨떠름히 시선을 떨어트렸다. 불길함과 어색함에 몸부림치고 있는 아들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시라마는 내내 무표정이다. 이따금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히거나 하고 있었다. 거스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니만큼 대화를 재촉 하는 것이 꺼려진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찻잔에 핀 국화꽃이 곤죽이 다 되어서야 하시라마는 운을 떼었다.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지쳤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 있을리 없다. 표정을 단단히 매고 시선을 맞추면,
“아내의 행실은...”
음?
“아내의 행실은 다홍치마 때부터 그루를 앉혀야 한다는 말이 있긴 하다만... 아무리 애를 써도 훈육이 잘 되지 않는 며느리도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느냐?”
말의 의중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초조함에 정신을 반 쯤 날리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슨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던 만큼 야마토는 성대하게 기력이 빠졌다. 무심코 어깨를 늘어트리니 그것을 질책하는 눈빛에 피부가 따끔거린다. 냉큼 자세를 곧추세우며 곰곰이 들은 말을 반추해 보지만 역시 홀아비 살림에 있지도 않은 아녀자의 행실을 따질(그것도 아들과) 이유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시라마는 성적 나쁜 아들을 훈계하는 듯 짐짓 나무라는 투로,
“여자를 집에 들일 때는 애초부터 곰곰히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야. 혹여 실수라도 하면 패가망신을 면치 못하게 되니까.”
“....예”
고압적 아버지에 대한 반동 때문인지 야마토는 사실 오래전부터 부부가 평등한 결혼생활을 꿈꿔 왔었다. 그러나 괜히 의견을 피력하거나 해서 귀찮아지는 것은 사양이라 일단 여기는 수긍해 둔다. 여전히 진의는 읽을 수 없었지만.
고분고분한 태도에 만족을 느낀 하시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여자를 잘 들이는 일이 집안에 얼마나 큰 일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집안이 잘 되려면 아내를 잘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근원이라면 짐작이 있다. 아버지의 아내, 즉 야마토의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남편이고 간난이고 다 버리고 집 나간 어머니는 집안에서 수치의 상징같은 것이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야마토라고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엄마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버려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 못할 일은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근엄과 지배라는 단어를 빼면 아무것도 안남을 것 같은 아버지의 딱딱한 얼굴을 보면 숨막힐 듯 한 갑갑함이 든다.
기실 하시라마가 연금 수준으로 가두다시피 하며 어머니를 옥죄었던 것은 너무 짙은 애정과 깊은 질투심 때문이었다. 설상가상 독불장군에 쇠고집이다. 지금도 부인을 잊지 못해서 재혼도 못했다. 2년도 같이 못살았던 아내에게18년 가까이 정절을 지켰으니 열녀문, 아니 열부문을 세워줘도 아깝지 않다.
이제 그만 순순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개과천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지만 쓸데없이 가부장이라 굳이 자식에게까지 아내의 행실이니 뭐니 거들먹거리는 아버지가 야마토는 좀 진절머리 났다. 아버지의 사고는 이해하기 어렵고,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도 모르겠다. 두서 없이 바람직한 아내상을 열거하는 하시라마의 이야기는 야마토에게는 반절도 닿지 않았다.
어쨌든 머릿말이 너무 길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따지고 싶은 것을 참고 있으면 갑자기 폭탄이 떨어졌다.
“그러니 혼인해라.”
“예?!”
바람직한 아내의 조건이 어떻게 자신이 결혼하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는가? 미처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야마토의 혼인은 결정됐다.
•••
파란 기왓집 도련님의 반려를 공개선발 한다는 이야기는 3일도 채 되지 않아 이웃마을에 까지 퍼졌다. 과연 코노하마을 파란 기와집의 명성은 허세가 아니다. 파란 기와집으로 따지면 명예, 명성, 재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문가다. 수준이 비슷한 고관대작 가문과 정략결혼을 도모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을 알면서 하시라마는 굳이 공개구혼이라는 골치 아픈 시스템을 선택했다. 야마토는 그제서야 며느리의 조건을 거들먹거리던 아버지의 진의를 깨달았다.
하시라마 왈, 가문의 훌륭함과 학문의 정도는 바른 아내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 같다. 바른 말이기는 하지만 선뜻 기쁜 마음은 안들었다. 불의나라 공주였던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한심함 때문에도 그랬지만 몰려든 규수들이 대문도 못 넘고 다시 돌아가는 이유가 참으로 변변치 못했다. 가문과 학문이 아니라 나이와 외모를 따져 1차 합격자를 가려낸다니, 그 천박함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진다.
스스로 말하기는 뭐해도 일단 공자니 맹자니 나름 학문 깨나 한 선비로서, 드물게 야마토는 아버지에게 반발했다. 그러나 하시라마는 ‘모름지기 새신부는 어리고 고와야 신랑의 사랑을 듬뿍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일축하며 잘못 입력된 아내상을 마음껏 과시했다. 물론 동색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아내가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열 아홉을 맞는 야마토의 연령을 생각하면 두 세살만 어리다 해도 아이나 다름없다.
괜찮은 걸까 이대로....
서재의 작은 창을 열어 기와집으로 몰려오는 규수들의 행렬을 본다. 일차 관문을 통과한 규수들은 비어 있는 별채에 각각 방을 배정 받았다. 대문에서 규수들의 외모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이즈모와 코테츠다. 과연 엄선에 엄선을 거듭하고 있는지 뽑힌 규수들은 하나같이 용모가 빼어났다. 아직 소녀 연령이라는 건 제쳐 두고서라도.
결혼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되려 빨리 결혼해서 부인과 알콩달콩 풍류를 읊으며 살고 싶다. 혼인에 이렇게까지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은 거북하지만 저기 있는 후보들 중에 자신의 색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몸은 시간이 흐르면 자라는 것이고 아직 연령 미달인 아이를 보고 발정할 만큼 성욕이 무진장한 것도 아니니 연애하는 듯한 신혼도 괜찮다.
일단은 아버지 뜻대로 결혼하지만, 결혼만 하면 절대 독립하겠다고 야마토는 조금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결혼이라니, 성인으로 인정받아 아버지의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아버지가 싫니 어쩌니 해도 이렇게 결혼까지 떠밀린 자신의 패기없음을 생각하면 한심하지만, 이 참에 예쁘고 마음씨도 착한 아내를 얻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고 사고는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희망 어린 예측도 잠시,
피골이 상접한 며느리 후보가 터벅터벅 힘 없는 발걸음으로 야마토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눈과 볼이 쑥 들어가 있고 탱탱했을 피부도 왠지 쪼글쪼글해 보였다. 창백한 안색을 한 소녀는 야마토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좀비처럼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이 광경을 지금까지 몇번 봐야했던고?
두번째 관문을 견디지 못한 아가씨들이 시험을 줄줄이 포기하기 시작한지 벌써 반 년. 며느리 찾기는 좀처럼 수확을 내지 못한 채 위기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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