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IRU ONLY 페러렐 90% 이상 분포 주의
※표시가 붙은 글은 폭력 및 성적 묘사를 포함합니다. 표시가 없어도 기본 어른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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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불명의 시라누이 겐마의 날선 태도, 나쁜 안색, 아픈 허리, 파란 두건. 시라누이 겐마으로 의심되는 여러가지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래도 그는 쉽게 제가 절친을 건드렸노라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심적으로 솔직히 믿기가 어려웠다. 사나이가 어떻게 친구를 건드린단 말인가. 말도 안된다. 이건 직접 본인에게 확인을 해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강렬하게 의심이 되니까 얼굴 보기가 엄청 껄끄러웠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엄청 미안했다. 피차 못볼 꼴 다 본 사이라지만 그래도 친군데.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이냐. 하릴 없이 방안에서 서성이다가 그렇게 시간만 잡아먹었다. 입맛이 뚝 떨어져서 점심도 걸렀다.
이게 다 기억이 없어서 그런다. 기억이 없으니까 평소하고 다르게 자꾸 소심해지고 그런 것 같았다.
씨발, 도저히 안되겠다. 성격에 안맞아서 못해먹겠다. 정말로 시라누이 겐마가 맞다면 땅바닥에 마빡 쳐박고 남자답게 사과하면 된다. 사과를 받아줄지 안받아 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으나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용감하게 벌컥 방문을 열면 마침 제 방에서 나오던 야마토와 마주쳤다. 카카시를 보고 야마토가 놀라 물었다.

"안색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에이 엄청 안좋아보이는데?"

그냥 어제 술 마신것 때문에 머리가 아파 그런다고 대충 대답을 하니 야마토는 고개를 갸웃 하면서도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점심도 거르더니 왠일로 숙취가 다 있댜. 맞다. 엊그제 사스케가 집 갔다가 꿀가지고 왔는데. 걔네 형이 양봉하잖아. 그거 줘?"
"...그래. 근데 그건 뭐냐."

야마토는 채 다 먹지 못하고 남긴 죽 그릇과 젖은 수건을 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야마토가 뭘 하든 쳐다도 안봤을 텐데, 괜히 마음이 캥기고 불편했던 그는 야마토를 붙잡고 말을 끌었다.

"누구 아퍼?"
"아, 어어. 이루카 병났어. 한동안 잠잠 하더니 또 그러네."
"이루카가? 어디가 아픈데?"

놀래서 되물어봤다. 그러고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 봤는데 이루카 얼굴을 못봤다. 다른 때 같으면 일어나자마자 먼저 얘부터 찾아봤을 건데 강렬한 사건이 하나 빵 터지는 바람에 생각도 못했다. 미안 이쁜아.

"몸살인데 벌써 드러누운지 삼일이나 됐어."

이루카의 방쪽을 힐끗 본 야마토가 혀를 끌끌 찼다. 우미노 이루카는 평소에는 엄청 건강한데 한번 아프면 제대로 앓는 편이었다. 자잘하게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아프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아파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많이 샀다. 건강하게 잘 웃던 애가 식은 땀 흘리며 낑낑대면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고 그랬다. 그렇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며칠 내내 누워만 있다가 어느순간 지옥에서 귀환한 것 마냥 스윽 일어나는 것이다.

"많이 아파?"
"어제 매니저랑 병원도 갔다왔다는데 점점 더 심해져서 아무래도 또 가봐야 될 것 같어."

이번엔 유독 더 잘 안 낫네, 야마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야마토의 말에 카카시는 몸살에 앓고 있을 이루카가 매우 걱정이 됐다. 그 이쁜게 이번엔 또 얼마나 아프길래. 그래도 가끔 문자라도 보내고 곧잘 전화도 하더니, 소식이 없었던게 아파서 그런거였구나. 당장에라도 달려 들어가서 애 얼굴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된다. 뭔가 찔리는 구석 많은 그는 지금은 도저히 제 예쁜이 얼굴 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대신 꽉 닫힌 시라누이 겐마의 방쪽을 바라보았다. 보통 나무 문이 지금같아서는 무슨 악마의 헬게이트 같아 보였다. 하지만 저길 뚫고 지나가 시라누이 겐마에 대한 의문을 풀어 내야 이루카의 얼굴도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미노 이루카는 제가 저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나이의 순정이라는게 그렇다. 그렇게 스스로를 쇄뇌시키니 겐마의 방문을 두드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니었다.

"얘기 좀 하자."

겐마의 방에는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는 순간 흠칫했다. 파스 껍데기가 책상에 돌아다니는 걸 봤다. 저걸 어디에다 붙였을까. 설마 허리에다 붙였을까. 정말로 그랬을 것 같고, 진심 무서운 생각이 든다.

"뭐야."

돌아보는 시라누이 겐마의 표정이 완전 썩었다. 저에게 어떤 일로 감정이 상한게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제가 시라누이 겐마의 감정을 상하게 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단 말이다..... 아 진짜. 정말 시라누이 겐마인가? 이야기 좀 하자고 먼저 들어오긴 했는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가 막막했다. 아니 사실 할말은 명명백백 한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야... 많이 아프냐?"

사실 책상 사무 의자에 앉아 있는 겐마의 안색은 정말 파리해서 물어볼 필요도 없이 되게 많이 아파보였다. 아까도 부엌에서 한번 봤지만, 찔리는게 있는 그가 봤을 때는 참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그런 안색이었다.

"존나 아픈데."
"...."

아 그래 많이 아프구나.....말 안해도 안다. 평소라면 택도 없는 일인데 거기서 차마 뭐라고 받아치지 못했다. 사스케와 야마토는 아니고, 우미노 이루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루카는 며칠 내내 아파서 방에만 누워있었대고....그는 관자놀이께로 급격히 밀려오는 두통을 느껴야했다. 아무리 봐도 남은 건 이 자식 밖에 없다. 갑자기 이유없이 딱잘라 대하는 태도도, 갑자기 아픈 몸도. 파란색 두건이 없어진 걸 보면 기억이 없는 동안 시라누이 겐마를 만났다는 것도 분명한 일일테지.

"야...."

모든 것이 시라누이 겐마를 가리키고 있었다. 겐마를 불렀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는 한참으을망설였다. 하지만 소심하고는 거리가 먼 그 성격에 계속 입을 다물고 서 있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직접 듣지 않으면 아무리 정황이 시라누이 겐마라고 짚어줘도 납득 못할 것 같았다.

"오늘 새벽에....그러니까......"
"......"

오늘 새벽이라는 말에 반응한 시라누이 겐마의 눈빛이 변했다. 언뜻언뜻 혐오를 품은, 천하의 몹쓸 놈을 보는 것 같은 딱 그런 눈빛. 새벽에 나랑 무슨 짓 한게 정녕 너가 맞는 것이냐. 점점 자신감은 나락으로 처박히고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결론이 사실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졸도할 것 같은 것을 참고 그는 간신히 다시 말을 이었다.

"....저....아.....그러니까.....혹시 내가 무슨 짓 했냐....?"
"......"

시라누이 겐마는 답이 없었다. 그저 뭔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쏘아 볼 뿐이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너 지금 나한테 묻는거냐?"
"....."

날씨도 맑은데 어디서 벼락이치나. 이제는 눈 앞이 노래졌다 파래졌다 한다. 시라누이 겐마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카카시는 귀신에 홀린 듯 그 방을 빠져나왔다.

'진짜냐....'

그에게 시라누이 겐마의 행동이며 말은 어떻게 해석 하든 새벽에 일어났던 일을 긍정하는 것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꿈도 잘 안꾸는데 왠 개꿈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 저는 한 순간의 실수에 졸지에 우정도 잃고 사랑도 잃게 생겼다. 요번에 우미노 이루카를 강간해서라도 무조건 제껄로 만들어버려야겠다 생각했던 건 이미 물거품이 되어 멀리멀리 사라졌다. 아무리 술을 쳐 마셨어도 그렇지 제 아랫도리가 이렇게 분별 없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겐마의 싸늘했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앞으로는 그 새끼 얼굴 볼때마다 이렇게 주눅이 들것이다. 도대체 이제부터 제가 무슨 낯으로 친구 얼굴을 본단 말인가. 시라누이 겐마와의 우정은 이제 회복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아, 진짜...누가 제발 좀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당장 말해.

"난 쟤네 사이가 저렇게 각별한 줄 미처 몰랐지."
"나두요."

그날부터 하타케 카카시는 자진해서 몸이 불편한 시라누이 겐마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겐마에게 물을 떠다 바치는 카카시를 숙소에 들른 매니저와 코디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벌써 이틀 째 시라누이 겐마 뒤만 졸졸 쫓아 다니는 중이었다.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좋아서 하는 짓도 아니고 카카시는 카카시 나름대로의 심각한 사정이 있는 것이었다.

"약먹어라."

물과 함께 내민 것은 근육통 약이었다. 사실 시라누이 겐마가 거동을 못할 정도로 아픈 건 절대 아니었다. 하루 지나니까 얼굴 색도 멀쩡해 졌고 제대로 걸었다. 아픈데가 없었다. 그래도 하타케 카카시는 고심 끝에 사온 근육통 약을 모두 먹여야 겠다고 생각해서 식후만 되면 시라누이 겐마에게 알약을 들이밀었다.

"안 먹어."
"야 그래도 먹지..."
"아 안 먹어도 된다고. 왜 안하던 짓을 하고 지랄이야."

시라누이 겐마가 다 나았다는 건 카카시도 알았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해서 그랬다. 그러니까 이건 시라누이 겐마하고는 전혀 상관 없이 그가 제 나름대로 죄값을 치르는 중인 것이었다.
그날 하루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이깟 실수 때문에 시라누이 겐마에게 목이 매인다던지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건 시라누이 겐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 일에 관하서 함구하는 시라누이 겐마는 아무래도 그냥 모르는 척 덮고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명백한 실수였으며, 저도 그렇고 겐마도 그렇고 이게 누구한테 말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 새벽 일은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니까 겐마는 니가 잘못한 건 아냐며 한숨을 탁 쉬고 말았다. 너는 앞으로 술은 입에 대지도 말아라, 하는 말도 덧붙였다. 알았다고 답했다. 다신 안마신다고. 그게 끝이었다. 시라누이 겐마는 후로도 시종일관 틱틱댔지만 냉랭하거나 하는 태도는 접었다.
전에는 정말 몰랐는데 제 친구는 참 마음이 넓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대로 조용히 묻힐 것 같았다. 좋은 친구를 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심 대놓고 주먹질이라도 해줬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야 좀 덜 미안할 것 같으니까.

"야 ,제발 먹어라."
"아씨 너 왜 이렇게 알짱대?"

카카시가 너무 안절부절 못하니까 겐마는 짜증을 냈다. 몰라서 묻냐 새꺄. 카카시는 이 말을 목구멍으로 간신히 삼켰다. 하지만 십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저가 시라누이 겐마한테 그런 꼴을 당했다면 이렇게는 안끝난다. 코노하 ENT를 절단내는 한이 있어도 죽여버린다. 실수라고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사건이었다. 물론 그날의 기억이 전혀 없는 그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짜증이 불 같이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시라누이 겐마가 꽤 참아 주고 있는 거란 생각에 저도 꾹꾹 참았다.
그날 무슨일인지 5대가 소속 연예인들을 소집했다. 그 여자 속셈은 빤하다. 회식이니 뭐니 해서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이다. 카카시는 혀를 찼다. 내가 평생 술따위 마시나봐라.

"이제 가야되는데 이루카는 뭐하냐? 준비 안됐어?"

메인 매니저인 코테츠가 우미노 이루카를 찾았다. 이루카의 방 근처에 있었던 사스케가 슬쩍 가서 안을 들여다 보고는 답을 했다.

"지금 옷입어."
"아직도?"
"어. 야마토가 도와주고 있어."

우미노 이루카는 정말이지 몸살을 독하게도 앓았다. 그가 시라누이 겐마한테 신경쓰느라 머리가 빠개지고 있던 중간에도 계속 아팠다. 그는 매우 상심했다. 겐마한테 붙어 다니느라 이루카의 일에 소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런 사태가 발생할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래도 카카시는 문득 문득 제 예쁜이 생각이 나면 주머니에 넣어둔 토끼핀이나 손에 한번 꾹 쥐고 그랬다. 설마 제 팔자에 이런 지지리 궁상을 떨게 될 줄은 저도 몰랐다.

"저래서 어떻게 데리고가냐. 원래 저 정도로 심하게 앓았었나?"
"이번에 유독 심해. 요즘에 감기가 독하다잖어. 일단 오대한테 얼굴이나 보여주고 병원 데려가야지.”
"그래도 나을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이번엔 가서 링겔 좀 맞춰."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 먹여야겠다며 걱정을 쏟아 놓는 코테츠와 이즈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반쯤 열린 우미노 이루카의 방 쪽을 보았다. 예쁜아.....시라누이 겐마랑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단단하게 씌인 콩깍지는 여전했다. 예쁜이는 여전히 예쁘고, 확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것도 변하지 않았다. 게다 죽도록 아프다니까 가서 얼굴 한번 쓸어 주고 싶고 그랬다.
그런데 시라누이 겐마에게 뿐만이 아니고 예쁜이에게까지 쓸데없는 죄책감이 생겨난 것이 문제였다. 시라누이 겐마하고 있었던 일이랑 우미노 이루카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시라누이 겐마한테 몹쓸 짓 해놓고 모르는 척 이루카한테 가서 헤헤대는 것은 병신 같았다. 죽어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하타케 카카시는 나름대로 뒷수습 한답시고 시라누이 겐마 뒤꽁무니나 쫓아 다닐 수 밖엔 없었던 것이었다.

"준비 됐으면 얼른들 내려와."

야마토가 이루카를 부축해서 데리고 나오는데, 그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야마토가 무슨 시체 치우고 있는 줄 알았다. 얼굴은 핼쓱하고 건강해보이던 피부색은 창백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아파, 응? 거기다 야마토한테 거의 안기다시피 하는 걸 보니까 더 울컥했다. 그런 일만 없었으면 지금 자신만만하게 우미노 이루카를 옆에 끼고 있는 것은 저일 것이 아닌가.(아마도)

"아, 나 방에 핸드폰 두고 왔다. 이루카 너 여기 잠깐 기대 서 있어."
"응..."

야마토는 이루카를 현관 복도 근처에 기대 세워 놓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근처에 남은 것은 이루카와 카카시 둘 뿐이었다. 그 날 이후로 처음 둘만 남은 것 같았다. 따져 보면 카카시가 숙소로 돌아온지 이제 고작 이 삼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의식적으로 이루카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카카시가 활동이 한창일 때라 많이 바빴다. 스케쥴을 끝내고 숙소로 오면 오밤중이고, 또 이루카는 아프다고 방 밖으로 잘 안나왔다. 조금 시간이 날라치면 시라누이 겐마한테 가 있었으니까 볼 짬이 없었다.
보고 싶었는데 막상 둘만 남으니까 고개를 슥 돌려버린 카카시를 이루카는 바라보고 있었다. 막말로 이루카는 아무것도 모르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어색했다. 정작 무슨 일이 있었던 시라누이 겐마하고도 이렇게까지 어색하진 않았다. 카카시는 이게 다 제가 괜히 찔려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남자의 순정이라는 거 말이다.
무슨 말을 해야할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딱히 할말도 찾지 못했다. 일단 피하고 보자고 카카시는 신발을 챙겨 신었다. 그런데 옷자락 끝이 뒤로 끌려갔다. 뒤돌아 보면 이루카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카카시의 셔츠를 잡고 있었다.

"카카시씨..."

이루카는 감기 때문에 눈가며 양 볼이며 귀가 빨갰다. 조금은 빠르고 무거운 숨을 쉬었다. 곧 바스라질 것처럼 서 있는걸 보니 꽉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는 못하고 카카시는 괜히 흠흠 마른 목을 다듬었다.

"왜."
"저기요...."

이루카는 할 말이 있는 것 처럼 굴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뭔가 카카시의 눈치를 보며 그가 뭐라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둔한 사내는 그것도 모르고 주머니에 손을 꽃아 넣고 멀뚱히 이루카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의 주머니 안에서는 여전히 분홍 토끼핀이 만져졌다. 아래에서 빨리 내려오라고 독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얼른가자, 소리치면서 야마토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아픈 거 얼른 나아."
"카카시씨...."

그는 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서 슬그머니 이루카의 손을 떼어 놓았다. 야마토가 이루카의 옆에 붙어 선 것이 천불이 날것처럼 거슬렸지만 애써 모르는 척 놔두었다. 왠일인지 이루카의 표정이 매우 구슬프게 구겨졌는데도 이미 이루카를 뒤로한 카카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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